지난 11일 오전 9시(이하 현지 시간)를 전후해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건물에 2대의 비행기가 충돌, 완전 붕괴된 현장에서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중국 여기자의 '구사일생 탈출기'가 소개됐다.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의 쑨링링(孫玲玲) 북미지국장은 13일자 홍콩 문회보(文匯報)에 실린 '인간 연옥(煉獄) 탈출기'에서 여객기 충돌 직후 아수라장으로 변한 사고현장과 아비규환 속에 쓰러져 간 희생자들,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살아나온 순간들을 더듬었다. 다음은 쑨 지국장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한 '탈출기' 요약. 『11일 오전 9시가 가까워지던 시각 WTC 1호 건물 33층의 차이나 데일리 북미지국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던 중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순간 "지진인가" 생각했으나 그게 아닌 듯 했다. 잠시 후 또 다시 굉음이 들려오자 복도로 뛰어 나가 상황을 파악해보려 했으나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채 허둥지둥댈 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순간 건물에 연기가 이미 가득차 있었다.마침 CNN 뉴스를 본 남편이 떨리는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와 "테러로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어. 아무 일 없을테니까 진정하고, 속히 건물 밖으로 나와!"라고 말했다. 복도 계단 앞으로 달려갔으나 계단 입구에는 이미 탈출자들로 만원이어서 거북이 걸음 이었는데 3개 층을 내려가자 아예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소방관들이 부상자들을 먼저 피신시키기 위해 현장을 통제했는데 모두 좌우로 비켜선 채 부상자 운반 통로를 만들어 줬다. 이중엔 피와 살이 구분이 안될 정도로 선혈이 낭자하거나 얼굴과 머리쪽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사람, 또 심장병 발작 환자도 있었으며 맹도견에 의지한 채 도피하는 맹인도 있었는데 극한상황에서도 두말 없이 '약자'들에게 길을 양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20층쯤 내려왔을 때 무거운 진화장비들을 멘 또 다른 소방관들이 땀에 흠뻑 젖은채 건물 위로 올라가면서 화재 및 대피 상황을 꼬치꼬치 물었다.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과 먼지, 건축자재 파편, 진흙 등으로 온 몸이 뒤범벅이 된 채 건물 로비까지 정신 없이 달려내려와서야 구두가 벗겨져 나간 줄을 알게 됐다. 그러나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쿵'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뒤돌아보니 두 빌딩 모두로 화재가 번져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2호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순간 이 빌딩 40층에 있는 모건 스탠리 소속 친구들을 걱정하며 어딘지도 모른 채 마구 달아났다. 안전지대로 가까스로 피한 뒤 붕괴 현장을 돌아보며 가슴이 아팠다. 건물내에 있던 5만여명의 대부분이 건물 더미에 깔려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건물 붕괴위험 속에서도 자신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은 채 헌신적으로 부상자와 일반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중 대거 희생된 소방관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뉴욕 전역의 교통이 마비돼 7시간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더니 나의 생존 여부를 알지 못하는 전세계의 지인들이 보낸 전화 메시지 70여통이 녹음돼 있었다.』 (홍콩=연합뉴스) 홍덕화특파원 duckhwa@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