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중국 산업계에 세대 교체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진원지는 아시아.태평양(일본제외)지역 최대 PC메이커이자 '중국의 IBM'으로 불리는 롄샹(聯想)그룹. 이 회사 창업자인 류촨즈(柳傳志.56)가 경영권을 30대 부하 직원인 양위안칭(楊元慶.37)에게 넘긴 것. 류촨즈는 'IT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늙었다'며 고문자리로 물러났다. 중국 IT산업이 류촨즈로 대표되는 제1세대를 마감하고 젊은 경영인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제2세대로 접어든 것이다. '30대 샛별' 양 사장의 취임과 함께 지금 롄샹이 바뀌고 있다. 키워드는 '글로벌 경영'이다. "중국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IBM 컴팩 MS 등이 우리의 경쟁 상대다. 세계에 중국 젊은이들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 양 사장은 "2천명이 넘는 롄샹 종업원의 평균 나이가 28살도 채 안 된다"며 이같이 강조한다. 양 사장이 중국 최대 IT업체 총수로 오른 데에는 권력의 후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외국유학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력' 하나가 그의 무기였다. 1989년 대학(베이징 과기대학)졸업 후 롄샹에 입사한 그는 류촨즈의 눈에 띈다. 양 사장은 승진을 거듭했고 컴퓨터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그는 '쉽고 가벼운 컴퓨터'로 승부를 걸었고 이를 통해 IBM 컴팩 등 외국 컴퓨터업체의 중국시장 공세를 막아냈다. 중국 업계에는 이밖에도 30~40대에 기업 사장에 오르는 경영인이 적지 않다. 중국 기업이 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이치(一氣)자동차는 33개 자회사를 거느린 중국 최대 자동차 그룹.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주옌펑(竺延風) 사장의 올해 나이는 38세다. 컬러TV 시장 선두업체인 캉자(康佳)의 천웨이룽(陳偉榮) 사장도 갓 마흔을 넘겼다. 전자제품 업체인 주하이진산(珠海金山)의 융바이쥔(永伯君) 사장, 에어컨업체인 위안다(遠大)의 장웨(張躍) 사장, 부동산업체인 둥팡(東方)의 장훙웨이(張宏偉) 사장 등도 30,40대 기업인이다. 이들은 지난 6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중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 이후의 시대를 살아온 계층. 우리로 치자면 대학 80학번 이후 세대들이다. 그들은 대학시절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을 지켜봤다. 그들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고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안다. '중국의 386세대'들이 지금 기업의 핵심 세력이다. 가전업체 하이얼(海爾)의 장루이민(張瑞敏) 사장. 중국 가전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성장시킨 업계 리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세계 30대 기업인'중 26위로 뽑혔고, 최근에는 미국 포천지 커버스토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경영관은 '탈(脫)중국'으로 요약된다. 중국을 넘어 세계로 향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하이얼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에서 이미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 가전업계에는 이밖에도 국제급 기업인스타가 많다. 창훙(長虹)의 니룬펑(倪潤峰) 사장, 춘란(春蘭)의 타오젠싱(陶建幸)사장, 하이신(海信)의 저우허우젠(周厚健) 사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중국을 세계 최대 '가전 대국'으로 만들었다. IT 업계에 포진한 기업인들은 21세기 첨단화를 이끄는 주역이다. 중국 최대 사영 IT업체인 쓰퉁(四通)의 돤융지(段永基) 사장. 그는 베이징(北京)정보기술단지인 중관춘(中關村)발전을 주도, '중관춘 춘장(村長)'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 85년 친구들과 함께 2만위안(1위안=약 1백60원)을 모아 쓰퉁을 설립했다. 워드프로세서 팩스 등 사무자동화기기로 시작한 이 회사는 지금 컴퓨터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 종합 IT업체로 변신했다. 광케이블 업체인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 사장은 이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인물. 그는 서방국가의 첨단기술을 과감히 도입, 이를 바탕으로 독자기술 제품을 개발했다. 지난 95년 이후 광케이블 분야 매출액이 매년 1백%씩 증가, 작년에는 매출액 25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올해 중국 10대 갑부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IT발전을 위해 뛰고 있는 종합 IT업체 기업인으로는 이밖에 선저우수마(神州數碼)의 궈웨이(郭爲) 사장, 촹웨이(創維)의 주웨이사(祝維沙) 사장,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의 장자오둥(張兆東) 사장 등이 있다. 이동통신업체인 중국연통의 양셴쭈(楊賢足) 사장은 중국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 이동전화 사업의 총 책임자. 통신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CDMA 사업으로 우리나라 기업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통신장비 업체인 중궈푸톈(中國普天)의 어우양중머우(歐陽忠謀) 사장, 중궈왕퉁(中國網通)의 톈쑤닝(田遡寧) 사장 등이 통신업계에 포진하고 있다. IT업계 스타들에 가려 빛은 보지 못하고 있지만 기존 업계에서도 국제적으로 이름 높은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중국석유화학의리이중(李毅中) 사장, 제약회사인 하야오류창(哈藥六廠)의 왕자오진(汪兆金) 사장 등은 각각 세계적인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