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지난 31일 개막된 유엔 인종차별회의가 31일과 1일 연이틀 노예제와 중동문제에 대한 각국간 입장차이로 진통을 겪고 있다. 전세계 130여개국에서 6천명이 넘는 대표단이 참석한 이 회의는 31일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공격문제로, 1일에는 식민주의와 노예제 보상문제로 내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 회의를 통해 세계는 인종주의 문제에 정면으로직면할 기회를 얻게 됐다"면서 "그러나 중동과 노예제, 두 문제가 의견 일치를 깨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정상들은 1일 서방 선진국들이 과거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했으나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을 보였다.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한 보상은 아프리카 국가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면서 보상에 반대입장을 천명했다. 그는 사죄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고, 다시 만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다면서 사죄와 함께 보상문제는 종료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나싱베 에야데마 토고 대통령은 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에 대한 보상처럼 노예제와 식민주의의 피해자인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고주장했다. 보상을 요구하는 아프리카 정상들은 채무 탕감과 대폭적인 경제 지원이 보상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인간매매를 통해 돈을 번 국가들은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면서 "보상은 피할 수 없는 도덕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31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총리와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해 최악의 군사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 회의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짓밟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정의, 국제적 정당성을 지켜주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 제시 잭슨 목사와 만나 모종의 합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아라파트 수반은 시오니즘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을 인종차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자제력을 보여줬다. 당초 회의 불참을 선언했던 미국은 막판에 중견급 관리인 마이클 사우스윅 국제기구 담당 국무부 부차관보가 이끄는 대표단을 보냈다. 그러나 대표단은 최종 결의문에 반이스라엘 및 시오니즘 조항이 포함된다면 회의에서 조기 철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캐나다 역시 미국 입장에 동조, 고위급 대신 중간관리급대표단을 회의에 파견한 상태다. 아랍연맹 아무르 무사 사무총장은 최종 결의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공격행위와 홀로코스트 및 반유대주의의 고통을 함께 언급하는 타협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장 밖에서는 1만7천명의 시위대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탄압을 중단하라', '토지를 분배하지 않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미국 제국주의 타도', '노예제를 보상하라' 등 각종 요구사항이 담긴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더반 AFP.AP=연합뉴스) k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