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종교, 국적, 성적취향 등을 이유로 인간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관행의 근절을 위해 세계 인류가 힘과 지혜를 모으자는 취지의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가 오는 3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개막된다. 세계 150여개국에서 최고위급 정부대표가 참석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세계 도처에서 만연하고 있는 인종차별이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류의 일상사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하에 그 해법과 대응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그만큼 다루는 주제도 광범위하며 대응방법을 둘러싸고 이해당사국들간에 첨예한 대립양상도 노출되고 있다. 특히 회의 개최에 앞서 각국 실무대표간의 사전 의사일정 조율 과정에서는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영토점령 문제를 인종차별로 규탄할 것인지 여부와, 과거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에 대한 사과.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벌어졌다. 실무협의 과정에서는 본 회의에서 채택할 선언문 초안 내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전히 논란속에 미정인 채로 남아 있으며 행동강령의 15%도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했으며 결국 미국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회의불참을 결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참석 유도를 위해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양보 압력이 가해졌으며 그에 따라 아랍진영은 시오니즘을 인종차별로 다시 규정하려는 시도를 포기, 이 문제를 이번 회의에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인종적 우월성에 바탕을 둔 시오니즘운동'이라는 표현을 담은 문구가 선언문에 포함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노예제와 식민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유럽진영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미국내 흑인인권단체 등과 갈등을 보여왔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해 사과하고 범죄행위를 인정할 경우 배상의 문제가 따른다는 점 때문에 난색을 표해왔으나,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각국에 대한 원조와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절충안을 모색중이다.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중동문제와 노예제 피해에 대한 배상문제로 인해 다른 중요 이슈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간과되고 있는 이슈들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유럽 거주 난민들 ▲인도의 카스트제도로 고통받고 있는 하층민 ▲중국 공안에의해 고문을 당한 티베트인 ▲이스라엘 점령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 ▲사형제도의 희생자들 ▲개인적 성적취향에 따른 차별 ▲미국내 극빈층 흑인어린이가 극빈층 백인어린이에 비해 3배나 많은 현실 등을 꼽았다. 그러나 이들 이슈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도정부에서는 카스트제도에 따른 차별문제를 의제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 문제에 관해서는 이슬람권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에서는 지난 1951년 유엔의 난민보호협약에서 인종과 국적, 종교적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의 경우 난민으로 인정하도록 한 취지를 이번 회의에서 다시 한번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파월 국무장관의 불참을 선언하고 회의 자체를 전면 보이콧 하겠다고 경고한데다 각양의 이슈를 놓고 당사국들간에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애초 취지대로 이번 유엔인종차별철폐회의가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엔본부.더반 AP.AFP=연합뉴스)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