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으로 1일 열린 위안부 소송은 일본 정부에 대한 면책특권 인정 여부가 최대 쟁점이다. 다시 말해 '외국면책특권법'(FSIA)의 소급 적용이 가능한가의 문제로 미국은 테러 등 국제 범죄의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952년부터 면책특권에 제한을두는 예외 조항을 운용하다 1976년 FSIA를 제정, 성문화시켰다. FSIA가 소급 적용되면 반인륜 범죄는 면책특권을 묵시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는 강행 규범 위반 조항을 적용, 1941-45년 일본이 부녀자들을 군의 성적 노리개로 착취한 위안부 동원을 반인륜 범죄로 보아 면책특권을 배제하고 미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외국 정부의 상행위도 미국 영토에서 이뤄지거나 미국 영토 밖이라도 미국에 영향을 미칠 때에는 면책특권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 등 아시아 4개국 출신 위안부 15명이 지난해 9월18일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 일본 정부는 올 3월 7가지 이유를 내세워 소송 기각을 요청하면서 첫번째로 제시한 항목이 바로 면책특권으로 미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날 법정 심리에서 원고와 피고 양측이 각종 판례를 들이대며 소급 적용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먼저 발언에 나선 일본 정부측의 크레이그 후버 변호사는 일본이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위안부 동원이 공권력과 군사 지휘권의 남용은 될지언정 상행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유대인들이 독일 등을 상대로 제기한 50여억달러짜리 초대형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 세계적 인권 변호인으로 이름을 날린 마이클 하우스펠드(55) 변호사는 "외국에 대한 면책은 특권이지 권리가 아니다"고 전제하고 1941-45년에 이뤄진 위안부 동원은 인가받은 기업들이 일본 정부와 조직적으로 저지른 인신매매 범죄라고 규정했다. 하우스펠드 변호사는 설혹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 해도 면책특권은 절대적 명제가 아니라 사안별로 미국 정부가 판단해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지난 1942년 일본에 대해 전쟁 범죄를 미국 법정에 세우겠다고 경고한 점에 비춰 위안부 문제는 당연히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원고측은 한일 기본협정에 따른 청구권 문제가 부각되면 본질이 흐려질 소지가 크다고 보고 면책특권부터 다루자고 제안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 데다 헨리 케네디 주니어 판사가 진보적 성향이고 하우스펠드 변호사의 변론이 매우 설득력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소송이 기각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밝은 전망을 내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동조한 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도 있겠지만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인해 미국 스스로도 전범 소송에 휘말릴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3권 분립이 철저한 국가이므로 행정부가 일본 정부 편에 섰다고 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외교 문제가 걸려 있어 담당 판사가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많다는 게 법원 주변의 지적이다. 다만 위안부 소송을 배정받은 헨리 케네디 주니어 판사가 평소 진보적 성향이어서 이번 소송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측도 있다. 소송 기각 심리는 보통 일주일 이내에 끝나지만 이번 사안은 워낙 민감하고 많은 사람이 이해당사자로 관여하고 있어 빠르면 2주일 이내에 나올 수도 있으나 오래가면 몇 달 내지 1년 가까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미 일본 대사관은 이날 심리가 끝나자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보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서한과 외국인이 제3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미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부인하는 내용의 성명을 즉각 한국 특파원들에게돌려 위안부 소송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와 좋은 대조를 보였다. 한편 이날 심리가 끝난 후 한 방청객은 퇴정하는 후버 변호사에게 다가가 "일본 정부 관계자들 개인적으로는 사과했으나 정부 명의로는 사과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으나 후버 변호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