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MPR)의 탄핵 결정을 거부하고 있는 압두라만 와히드 전(前)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카세트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는 등 외형적으로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23일 오후 TV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MPR 특별총회 진행 과정을 지켜보다가 격려차 찾아온 친구 자야 수프라나와 함께 농담을 주고받다가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고 현지 언론들이 24일 보도했다. 그는 또 친구가 귀가한 뒤에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 교향곡에 맞춰 혼자 콧노래를 부리는 등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거의 없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탄핵이 공식 결정된 뒤 수 시간만인 오후 7시께 지지자 1천여명이 대통령궁 주변에 집결해 "구스두르(애칭)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을 듣고는 반바지 차림으로 현관쪽으로 나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와히드는 권력을 공식 박탈당했음에도 불구, 대통령 관용차를 상징하는 1번 차량 번호판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메가와티는 대통령 취임 후 곧바로 차량 번호를 2번에서 1번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통일개발당(PPP) 소속 국회의원으로 친구 사이인 하빌 마라티드가 방문했을 때 와히드는 폴로 T셔츠 차림에 샌들을 신고 머리에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채 손님을 맞이해 예우를 갖출 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음을 내보였다. 또한 이날 대통령궁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전국 어린이 대표 초청 행사를 비롯한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해 대통령 권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언에도 불구, 사실상 집권 의욕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게 했다. 대통령궁 주치의로 와히드 동생인 우마르 와히드는 형의 신체 및 정신 건강 상태와 관련해 "아주 양호하다"고 말해 외부인들에게 기이하게 비친 일련의 행동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반면 부인 신타 누리샤는 이날 150여명의 여성들과 함께 대통령궁내 이슬람 사원을 찾아 장시간 코란을 암송, 권력박탈에 따른 공허한 심경을 종교의 힘으로 달래보려고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군과 경찰은 와히드의 권력 이양 거부에도 불구,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본인과 가족의 신변을 경호할 계획이다. 한편 와히드가 소속된 국민각성당(PKB)은 메가와티가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며 납세거부와 주민등록증 반납 등의 방법을 통해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탄핵에 따른 후유증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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