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심야시간을 이용, 기습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한 23일 수도 자카르타는 경찰과 군의 삼엄한 경계속에 정적이 감돌아 폭풍전야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다. 특히 시위대가 탄핵 결정을 위해 이날 오전 8시 소집된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 저지를 위해 도심으로 서서히 몰려드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와히드 지지자들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0...자카르타 시민들은 23일 아침 TV방송과 신문을 통해 비상사태가 선포됐다는소식을 접하고 집밖 출입을 자제하고 도심에 위치한 기업체 사무실 대부분이 임시휴무에 들어감에 따라 평소 월요일 오전 극심한 체증현상을 보였던 도심 교통이 원활한 모습을 보였고 행인들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도심 수디르만 지역에 위치한 컴퓨터 소프트 개발회사 인테그라시 사장 안디 히자딧은 "비상사태 선포 후 치안상황 악화가 우려돼 오늘 아침 직원 100여명에게 전화를 걸어 출근하지 말도록 했다"고 밝혔다. 지문인식 경비시스템 회사 휴노의 현지 지사장 곽두건씨는 "출근길 교통이 평소보다 차량이 40-50% 줄어들어 매우 한산했다. 사무실이 입주한 26층 빌딩내 대부분기업들이 문을 닫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직원들이 치안불안에 떨고 있어 오후에휴무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근을 하지 않은 시민 대부분은 집에서 머무르며 TV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는 MPR 특별총회 진행 상황과 정치평론가들의 정국 전망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정국이 하루 빨리 안정되기를 기원했다. 신발업체에 근무하는 부르한 만수르(31)씨는 "비상사태 선포 후 와히드 대통령지지자들이 지방에서 대거 상경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신변 안전이 걱정돼 외출하지않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TV를 보며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가 대통령을 하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치안이 안정됐으면좋겠다"고 덧붙였다. 0...군과 경찰은 MPR이 탄핵 추진을 강행함에 따라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울라마(NU) 회원을 비롯한 와히드 지지자들이 자카르타로 집결, 대규모 가두시위에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계병력을 전날보다 2배로 늘리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군과 경찰 2천여명이 수륙양용 장갑차와 무장 차량 100여대를 배치,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한 채 삼엄한 경비를 펴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군과 경찰은 또 대통령궁 주변 도로에 높이 2.4m의 3중 철조망을 설치해 모든행인과 차량의 출입을 봉쇄했으며 일부 병력은 중화기를 대통령궁을 향해 조준, 와히드 퇴진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내비쳤다. MPR 건물 주변에는 경찰과 군이 실탄이 장착된 자동소통과 M-16 소총 등으로 무장한 채 4중 차단막을 설치, 출입 차량을 정밀 검색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완전히차단했다. 경찰은 또 전날 자카르타 동부 지역 성당과 교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7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재발될 가능성에 대비해 모든 종교 시설 주변에 경비병력을 배치,거동수상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MPR 주변에는 이날 오전 9시 특별총회 개최를 규탄하는 내용의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든 시위대 100여명이 집결했으며 동부 자바 등 지방에서 상경중인 와히드 지지자들이 오후에 합류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0...대통령궁과 군당국은 22일 발생한 폭탄테러의 배후와 관련, 서로 상대측을용의 세력으로 의심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은 폭탄테러 부상자들이 입원한 코롤루스 병원을 방문, 환자들의빠른 쾌유를 기원한 뒤 폭탄이 육군 소유 기업 핀다드에서 만든 것이라며 배후 세력으로 군부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군부가 치안 회복 명분을 내세워 최근 정치상황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폭탄테러를 감행,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부는 22일 밤 육.해.공군 특수부대 요원 2천여명과 수륙양용 장갑차를동원, 시가행진을 벌인 뒤 대통령궁 주변에 다시 집결해 23일 오전까지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있다. 군은 또 중국계 상인들이 밀집, 지난 98년 5월 폭동 당시 대규모 방화와 살인사태가 발생한 자카르타 중부 글로독 지역에 장갑차 20여대를 동원해 순찰활동을 나서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군부는 폭탄테러 배후와 관련해 대통령궁을 의심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의 명분을 찾기 위해 MPR 특별총회 하루 전날에 맞춰 테러를 감행했다는것이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을 봉쇄한 채 현장 감식과 목격자 증언을 통해 범인 색출노력을 하고 있으나 폭발물 성분만 규명했을 뿐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0...한국 대사관은 소요사태 발생 시 교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 동포 안내문을 교민들에게 배포한데 이어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며 현지경찰 및 군과 긴밀히 협조, 상황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대사관은 23일 배포한 안내문을 통해 와히드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에 반발하는데다 주요 정파간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한동안 정정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염려된다며 신변안전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안내문은 또 시위대가 운집, 경찰과 충돌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MPR 및 국회 건물과 호텔 인도네시아, 스망기, 스나얀 일대에 대한 출입을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사관은 또 상황이 악화될 경우 자카르타를 운항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증편을 요구하고 공항에 임시 영사과를 설치, 교민들의 신속한 국내 피신을 지원키로 했다. 호주 외무부도 22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소요사태가 확산될 경우 인도네시아에거주하는 자국민 수천명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민항기와 군용기를 동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