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 출장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주한 미군무원 박춘희(여, 당시 36세)씨가 직장 상사로부터 성희롱에 시달렸음을 보여 주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박씨의 남편 남학호씨는 8일 워싱턴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3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아내가 흑인인 직장 상사 샌드리스 맨으로부터 당한 성희롱을 수록해 놓은 컴퓨터 디스켓을 발견했다"며 "이는 맨이 아내의 죽음과 연관돼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강조했다. 남씨는 "디스켓 발견 직후인 3월8일 이 사실을 아내의 소속 부대였던 주한 미군 제20지원단과 미군범죄수사대(CID)에 고소하고 이달 4일까지 모두 10번에 걸쳐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으나 전혀 반응이 없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직장 성범죄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주한 미8군 사령관을 한국 법정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워싱턴에 도착한 남씨는 14일까지 머무르며 워싱턴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실상을 폭로하고 백악관과 의사당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등 미국내 여론을 환기한 후 귀국하는대로 고소장을 접수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씨가 공개한 디스켓에는 `오늘 네가 무척 보고 싶었다' `어제 밤 네 꿈을 또꿨는데 부츠를 닦는 모습이 나를 정말 흥분시켰다'(1998년12월15일) 등 맨이 박씨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내용의 e-메일이 잔뜩 담겨 있었다. 남씨는 이와 함께 미군 골프장 회원권을 규정 이상으로 남발한 부대장의 비리가 제20지원단 예산분석가였던 아내의 죽음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고 맨이 출장명령을 내린 후 아내보다 먼저 미국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점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남씨는 "아내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론지은 미국 버지니아주 경찰의 부검 결과도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며 이번 방미 기간에 미국인 변호사를 선임, 아내를 태운 택시회사와 경찰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속 115㎞로 달리는 택시에서 몸무게 45㎏짜리 여자가 혼자 문을 열고 뛰어내리기가 매우 힘들고 관성에 의해 몸이 차량 진행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데도 뒤로 떨어진 점 등이 부검 결과에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미 국방부 교육을 위해 지난해 8월5일 워싱턴에 택시를 타고 가다 밤 9시께 도로에 떨어져 숨졌으며 당초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경찰은 유족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재수사를 벌였으나 사건 발생 9개월만에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라는 얼버무리기식의 최종 부검보고서를 발표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