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인 `교토의정서' 문제를 놓고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미국과 유럽을 순방중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한 미국측에 끌려다니는 모습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출국전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지구온난화협약) 발효를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며 교토의정서를 지켜내기 위해 무언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정작 고이즈미 총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미국의입장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미국을 교토의정서에 참여시키기 위해 미.일간 고위급 회담을 열 것을 제의했다. 이어 그는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 양국 정상들과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의교토의정서 참여가 필요하다며 미국과 계속 대화해 나가겠다는 점을 강조, 미국 편에서 교토의정서의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나아가 고이즈미 총리는 파리에서는 오는 19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체약국 회의'가 끝나더라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 문제를 '장기전'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게 되자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미국을 교토의정서에 참여시키기 위해 의정서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얘기가 상당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정부 대변인격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2일 미국이 비준 가능한내용의 수정안을 일본 정부가 제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혀이를 뒷받침했다. 또 요미우리(讀賣) 신문 등 주요 언론은 온실가스 감축 폭과 감축 목표연도를수정하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보도했다. 이런 내용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교토의정서의 골간을 흔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마디로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눈치보기로 선진국인 일본이 당연히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이번 순방외교는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먼저일본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해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문한 야당과 환경관련 단체들의 주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1997년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마련한 교토의정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일본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야당과 일본 국내 환경단체들의 목소리가 묵살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의 교토의정서 탈퇴선언 직후 국회의원들이 연명으로 미국 주요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내 미국정부를 비판했던 `당당함'도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요란한 구주 순방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 총리는 귀국하게 되면 교토의정서 문제에 대해 `친미(親美)적인' 태도로 교토의정서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게 됐다는 야당과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