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유엔 구(舊) 유고 전범법정(ICTY)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의 태도는 오만함 그 자체였다.그는 법정에 들어서자 마자 천연덕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며 경멸에 가득찬 시선을 보냈다.


재판정의 정당성을 깔아 뭉개는 것 만이 자신을 변호할 길임을 확신한 듯 시종일관 가시돋친 답변으로 일관했으며, 법정을 비난하는 발언을 계속하다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짙은 감색 정장에 흰색.빨간색이 섞인 넥타이를 맨 밀로셰비치는 처음부터 어슬렁거리며 법정에 들어섰다. 애써 태연한 척 팔을 양쪽으로 흔들며 재판정 좌측 피고인석에 앉았으나 그후로는 꿈쩍도 하려 들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그가 법정변론을 거부해 방청석에 자리 잡았다. 방청석과 재판정 사이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탄유리가 설치됐다.


곧이어 영국인 리처드 메이 재판장이 입정했으나 밀로셰비치는 기립하지 않았다.처음부터 권위를 짓밟아 기선을 제압하려는 태도였다. 두 명의 유엔 보호관 중 한명이 옆에서 그를 끌어 세우자 억지로 일어섰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진술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라는 메이 재판장의 첫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격을 개시했다.


밀로셰비치는 영어로 말문을 열면서 "이 법정은 잘못됐고 기소내용도 엉터리다.법정 자체가 불법이다. 유엔총회의 승인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조작극에 변호인을 선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내뱉았다.


메이 재판장이 "기소내용을 청취하겠느냐"고 하자 기막힌 답변이 나왔다.


"그것은 당신 문제"


순간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오늘 변론진술을 하겠는가, 아니면 차차 생각해보게 휴정을 원하겠는가"


메이 재판장이 배려했으나 이번에는 세르비아어로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이번 재판의 목적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는 것뿐이다"


"밀로셰비치씨, 다시 한번 묻겠다", "이미 답변했다"


한번 더 신경전을 벌인 뒤 메이 재판장은 "진술을 거부하니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밝혔듯이 재판정이 잘못된 이유는, 불법적인 이유는..."


밀로셰비치가 다시 법정을 비난하려 들자 마이크가 꺼졌다.


메이 재판장은 "밀로셰비치씨, 지금은 당신 연설시간이 아니다"고 꾸짖었다.


재판장은 "피고인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충분히 변론할 기회를 갖고 있다"며 설전 11분만에 심리를 끝마쳤다.


밀로셰비치는 거만한 눈빛으로 방청석을 길게 응시한 뒤 보호관에 이끌려 셰비닝겐 교도소로 돌아갔다.


(헤이그 AP AFP dpa=연합뉴스)3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