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릴 유엔 반(反)인종차별 회의의 최종 선언문안을 놓고 미국 등 선진국들과 이들로부터 과거 식민통치를 받았던 아프리카 국가들, 그리고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함으로써 회의 전망을 어둡게하고 있다. 오는 8월 31일 더반에서 열릴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기타 불관용 반대 세계회의’의 의제들 가운데 가장 말썽이 되고 있는 2개 의제는 흑인 노예제도에 대한 배상과 시오니즘 규탄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들을 식민통치했던 유럽국가들과 기타 서방국가들에 대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린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아랍국가들은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로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무부는 19일 이같은 두가지 요구가 미국의 올 더반 회의 참가를 위협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다른 고위 미외교관들이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담당 고등판무관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우처 대변인은 "그들이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미국도 더반 회의 참가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우처 대변인과 다른 미국 고위관리들은 미국이 더반 회의를 보이콧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78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시오니즘에 관한 조항때문에 유엔 인종차별 반대회의를 보이콧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미국무부 고위관리는 그같은 사태가 올해 또다시 벌어질지 여부를 말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더반 회의에 앞서 현재 제네바에서 이 회의의 최종성명 문안을 놓고 관련 당사국들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남북간 분열의 골만 더욱 선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더반 회의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의가 아니라 오늘날의 인종차별 문제를 경감시키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전향적' 회의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이같은 문구 삽입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도 노예제에 대한 배상 문제를 성명에 첨가시키는데 반대하면서 이같은 요구가 더반회의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분열적인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 규탄과 기타 중동분쟁 관련 문제들을 의제에서 삭제시키도록 미국과 함께 로비활동을 펴면서 이같은 문제들은 정치적 문제이지 인종차별적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은 쌍방의 대립이 계속됨에 따라 최종 선언문안에 관한 협상기간을 추가 설정, 각국 대표들이 더반에 도착하기 꼭 한달전인 오는 7월 30일부터 협상을 재개하도록 주선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타협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면서 파월 장관과 로빈슨 여사간 회담의 핵심의제도 이 문제에 대한 결의안 마련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로빈슨 여사는 미국과 다른 옛 아프리카 식민통치 열강들에 대해 노예제도와 식민통치 실시란 과거 잘못을 사과하라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를 지지한 바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 역사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최고위 직책에 오른 파월장관은 로빈슨 여사와의 회담에서는 물론, 지난 5월 아프리카 대륙 순방중 여러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가진 회담에서도 미국측 반대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워싱턴 APㆍAFP=연합뉴스) hc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