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열었으나 기후변화대책, 발칸위기관리, 통상마찰, 미사일방어계획 등 주요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측이 표면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은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한 교토협약 이행 여부로 EU는 일방적으로 협약파기를 선언한 미국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여년간 국제사회가 대화를 거듭해 내놓은 기후변화대책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이번 유럽순방중 EU로부터 강한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 사실이나 EU의 비난 강도가 예상보다 높은 감이 없지 않다. 미국은 EU순방 직전 교토협약 파기 비난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추가 기후변화연구 등 대안을 내놓았으나 EU와 스웨덴은 "지금은 연구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이며 이미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요란 페르손 스웨덴총리는 회담 후 부시 대통령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EU는 교토협약을 강력히 지지하며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준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분명히했다. 또 스웨덴은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별도의 자료를 내고 "가장 복잡한 의제가 기후변화 문제였다"며 "우리는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EU가 미국의 교토협약파기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지나치게 자국 이익만을 앞세우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U는 또 미국이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버리듯 한 협약파기 방식에 대해서도 무례와 오만에 가깝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EU 의장국으로서 이번 정상회담을 주재한 스웨덴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하루 뒤인 15-16일 열릴 EU 정상회담에서 환경보호을 핵심의제로 삼고 있을 만큼 유럽에서도 환경보호정책으로 명성이 높은 국가라는 점도 강도높은 대미 비난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양측은 발칸위기, 통상마찰 해소, 미사일 방어 등의 현안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협력 입장 표명 외에 구체적인 대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측은 내전 위기로 치닫고 있는 마케도니아에 미국이 나토군을 파견해줄 것을 은근히 희망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정치적 해결 우선 모색이라는 종전입장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보스니아평화유지활동에서 가급적 빠지려 기회를 엿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분쟁지역에 추가 파병을 원치않고 있으며 EU는 유럽내 분쟁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마케도니아에 군사적 개입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으나 미군의 강력한 화기와 병참지원이 없이 독자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역분야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를 출범시키기 위해 공동노력한다는것 외에 철강수입, 호르몬쇠고기, 유전자변형작물 등 현재 걸려 있는 통상마찰 해소방안을 마련치 못했다. 미국이 유럽을 상대로 설득해야 할 최대의 현안인 미사일 방어는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나 이 역시 미국이 EU로부터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있다. 미국은 막후, 실무접촉 과정에서 EU로부터 미사일 방어 유보 입장을 재확인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같은 반대입장은 14일 오후 부시대통령과 EU 15개 회원국 정상들의 만찬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에 따라 EU와 미국은 부시 대통령 취임 후 마련된 첫 정상회담에서 그간 예상돼왔던 대로 주요 국제문제와 쌍무현안에 대한 시각과 접근 방식의 차이를 확인한 셈이 됐으며 당분간 대서양 양안에는 구체적인 현안을 둘러싼 긴장과 대결 양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브뤼셀=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