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1시께.

개장직후부터 수직낙하하던 닛케이평균주가가 돌연 상승세로 반전됐다.

달러당 1백17엔을 위협하던 엔화가치의 하락세도 멈춰서고 반등을 시작했다.

대책없는 시장추락에 제동을 건 브레이크는 "모리 요시로 일본총리의 사임설"이었다.

이날 시장반응이 보낸 메시지는 "경제의 짐이 된 총리"였다.

일본경제의 비극을 보여준 단면이었다.

부실채권 재정적자 등 일본경제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 비관론의 근원을 따져들어가면 이런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정치적 지도력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지도력 부재는 10년 장기불황의 주요인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9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모리에 대한 지지도가 9%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부패혐의로 중도하차한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낮은 지지율이다.

이 신문은 요즘의 증시침체에 대해 "시장이 정치공백과 경제개혁 답보에 경고를 보내는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정치불안과 정책부재에 실망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셀 재팬(sell Japan)''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다이와증권의 자본시장 총괄 매니저인 진나이 카주노리는 "모리가 퇴임하지 않는한 증시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리 퇴진은 점차 기정사실화돼 가는 양상이다.

문제는 언제 퇴임하느냐와 후계자는 누가 되느냐다.

자민당 내부에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고려할때 늦어도 내달 13일 전당대회전까지는 모리가 퇴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후계자로는 고노 요헤이 외무장관,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고이주미 주니치로 자민당 모리파 회장,노나코 히로무 전 자민당 간사장 등이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중 경제난국을 타개할만한 개혁성과 파워를 가진 사람은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총리가 바뀐다고 정책기조가 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총리는 당파간 균형을 조절하는 얼굴마담일뿐 혁신적인 개혁안을 추진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관료-재계로 이어지는 부패의 3각 철옹성을 깨뜨릴 유일한 힘은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이번 7월 참의원 선거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며칠전 도쿄주재 외국인 기자들과 만나 ''모리현상''을 이렇게 비유했다고 한다.

"모리는 술취해 잠들어 버린 일본의 아버지다. 깨어나면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말한 뒤 다시 잠들어버리는 아버지,무식하고 아둔하지만 악하지는 않은 가장,일본인들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런 아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유권자들의 무기력이 변하지 않는한 3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붙잡는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