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 밸리 ''빛과 그림자'' ]

일본은 화산의 나라다.

일본인 누구나가 신성시하는 후지산도 태고적에는 활화산이었다.

화산재와 연기를 내뿜는 산이 지금도 적지 않고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산이 화산 활동을 시작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20,30대 젊은 벤처인들이 지핀 일본의 인터넷 창업 붐은 화산을 연상케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도쿄 시부야에서 불붙은 인터넷 벤처 열기는 북쪽의 삿포로에서 남쪽의 후쿠오카까지 일본 열도 구석구석으로 퍼져가며 제2, 제3의 비트밸리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오사카에서 열린 간사이 지역 벤처교류회에는 5백여명의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삿포로 나가사키 규슈 효고 도카이 교토 쇼난 가나가와 사이타마 도호쿠 등 전국 각지에서는 올해 초부터 관청과 기업,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교류회가 앞다퉈 생겨나고 있다.

모두 성공신화를 꿈꾸는 벤처인들이 ''도쿄에 뒤질 수 없다''며 비트 밸리에 자극받아 만든 커뮤니티들이다.

비트 밸리는 일본 젊은이와 기업인들에게 용기와 모험심을 심어준 게 사실이다.

정해진 울타리 내에서의 규율과 작은 행복에 안주했던 직장인 관료들도 과감히 사표를 던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기 직장으로 꼽혔던 일류 대기업을 외면하고 비트 밸리에 젊음을 맡기는 명문대 졸업생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 솔루션 업체 ''옐넷''의 혼마 다케시(25) 사장은 주오대학 3학년 때인 지난 96년 회사를 세운 후 일에 매달리느라 학점 부족으로 아직 졸업을 못했다.

하지만 후회나 방황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보람과 성공신화를 만들어 낸다는 성취감에 언제나 마음이 뿌듯하다.

그의 회사는 자본금 2억5천5백만엔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자산 가치를 벌써 1백억엔 대로 보고 있다.

니시카와 기요시 ''넷 에이지'' 사장은 "비트 밸리가 처음 생겼을 때는 20대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엘리트 30,40대 직장인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며 "이는 인재 유동화 현상이 본격화된 것을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틀과 선입견에 도전하는 고급두뇌들이 모인 곳인 만큼 비트 밸리에서는 기업 활동을 보는 시각도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기업이 특정 사업을 매각하면 굉장한 불명예이자 실패 신호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일본 재계에서는 강했다. 하지만 비트 밸리에서는 이런게 없다. 오히려 매각 뉴스를 해당 기업이 실력을 인정받는 좋은 소식으로 본다"(마쓰야마 다이가 비트밸리 어소시에이션 이사)

하지만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역동적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비트 밸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일본 내에서도 존재하는게 사실이다.

게이오 대학의 고쿠료 지로 교수(경영관리)는 "비트 밸리에 부족한 것은 경영능력"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창조성은 합격점을 줄 수 있지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수익 모델이라든지 캐시 플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관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지 못한게 큰 단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은 미국과 달리 대기업에 의존하는 체질인데 벤처 분야의 산학협동이 원만치 못해 인터넷 창업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벤처 기업인들의 자질 문제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20년 이상 벤처 컨설턴트로 활약한 쓰카카메 아키라씨는 "일본의 벤처인들은 욕심도 진지함도 부족하다"고 꼬집고 있다.

그는 "비트 밸리의 조직도 무한정 확대돼서는 곤란하다"며 "목숨 걸고 회사를 키우려는 진정한 경영자들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히카리통신 등 벤처기업의 선두를 달려 왔던 간판급 회사들의 주가 급락 후 일본 사회에서도 인터넷 기업을 보는 시각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모리 요시로 총리의 현 정권은 ''IT(정보기술) 정권''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닐 만큼 디지털 혁명에 국가적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붓고 있다.

모리 내각은 지난 9월 IT 전략기본법을 제정한데 이어 5년 내에 미국을 능가하는 초일류 IT 강국을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시련과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해도 비트 밸리의 외부환경이 기본적으로 좋아지고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닷컴기업이 주도하는 신경제 위축현상이 일본에도 나타났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일본 벤처들에는 버블을 걷어내고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계기입니다"

비트 밸리의 대표적 여성 CEO(최고경영자)로 주목받고 있는 ''DeNA''의 난바 도모코 사장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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