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벤처거품 실태 ]

지난 9월29일 베이징에서 이색적인 경매가 이뤄졌다.

''인터넷 사이트 경매''가 그 것.

중국 인터넷사이트를 경매를 통해 국내외에 매각하는 행사였다.

이 경매에는 2백여개 중국 인터넷사이트가 매물로 나왔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기업도 다수 참여했다.

1만위안(1위안=약 1백30원)짜리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일부 사이트는 수천만위안에 매물로 나오기도 했다.

이 경매에 참석했던 H사 관계자는 "많은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면서도 "일부 사이트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일부 중국인은 미리 선점한 인터넷주소를 내놓기도 했단다.

이 행사는 중국 인터넷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업 기회와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다는게 중국 인터넷업계의 문제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위기감이 ''사이트 경매''로 나타난 것이다.

중국 정보기술 분야 벤처기업은 주로 외국자본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벤처기업의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투자자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중국 내부에서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가 극히 제한돼 있다.

중국은 내년 초 선전에 정보기술 벤처업체를 위한 제2주식시장(차스닥)을 설립할 계획이다.

많은 벤처기업이 차스닥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웃 홍콩의 잼(GEM) 시장이 버티고 있는데 과연 선전 차스닥이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최근 중국 벤처업계에 불고 있는 M&A(인수합병) 붐 역시 중국 벤처업계의 자금난을 반영하고 있다.

자산매각이 자금조달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주요 인터넷포털업체인 소후(搜狐.www.sohu.com)는 지난 9월26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이트인 차이나렌(www.chinaren.com)을 3천만달러에 매입했다.

스탠퍼드대 유학 출신 3명이 만들었던 차이나렌 사이트는 독자 생존을 포기, 흡수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다른 기업에 팔린 업체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중국내 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베이징의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 인터넷관련 벤처기업중 70∼90%가 1년안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개성없는 유사 사이트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벤처기업 위기론은 중국 업계에서도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벤처기업이 꽃피지 않았기 때문에 버블붕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협회 양웨이둥(楊衛東) 비서장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외국 자본이 정보기술 분야로 대거 유입될 것"이라며 "지금의 어려움은 오히려 경쟁력없는 업체를 속아내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