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경제는 현재 전형적인 위기국면에 빠져 있다.

외국인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이를 막기위해 금리는 끝없이 올라가고 있다.

올들어 페소화가치는 바닥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25일 마닐라시장에 나온 외환딜러들은 1달러를 사기위해 사상 최고가인 49.66페소를 지불해야 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부통령이 이날 뇌물스캔들에 휩싸여 있는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자 페소화는 더욱 떨어졌다.

필리핀정부는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최근 5개월간 금리를 다섯 차례 올렸다.

특히 지난 12일에는 콜금리를 연 11%에서 15%로 4%포인트나 인상했다.

사상 최대 인상폭이었지만 페소화 하락세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외국인자금 이탈과 금리인상 등으로 주가는 올들어 40% 떨어졌다.

페소화가치 하락과 고유가 때문에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도 치솟고 있다.

올 정부예산은 현재 8백30억페소(약 2조원)나 구멍나 있다.

그러나 경제신뢰도 하락으로 해외자금 차입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20일 필리핀의 국가신용등급을 ''안정(stable)''에서 ''부정(negative)''으로 강등시킨 데다 9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은 자금의 이자 3억달러도 연체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필리핀경제에 뿌리를 둔 ''제2금융위기설''이 빠른 속도로 아시아 전체에 퍼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최신호(10월21일자)는 필리핀 위기의 주범으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지목했다.

미국의 경제전문 다우존스통신도 23일 "지도력 부재가 국가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외국인투자자를 몰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금융시장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새로운 뇌물스캔들이 한 건 터져나올 때마다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에스트라다는 불법 도박업자에게서 8백60만달러,민간업체로부터는 2천만달러어치의 토지 및 고급 주택을 상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담배세에서는 2백80만달러의 뇌물이 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갔다.

의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군부 쿠데타설도 분분하다.

이같은 정국혼란으로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정국불안-통화가치 폭락-금리상승-증시붕괴-경기침체''가 지금 필리핀의 자화상이다.

다우존스통신은 현재 15%인 콜금리가 지난 97년 외환위기 수준(34%)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가 최소 10%포인트 더 오르지 않는 한 페소화가치의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늘어나는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내 금융기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정부는 국채 이자율을 높여주는 것 외에는 다른 뾰족한 길이 없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내년 5월 치러질 의회선거가 필리핀경제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지적한다.

시중에 풀려 나올 후보들의 선거자금이 아사(餓死)상태의 경제에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