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금융 상품의 원조인 블랙.숄즈 이론을 월가에 접목한 사람은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건때 유명해진 롱텀매니지먼트(LTCM) 설립자 존 메리웨더였다.

노벨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 및 로버트 머튼 교수와 당대 최고의 트레이더였던 메리웨더의 운명적인 만남은 1988년 월가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금융기관이었던 샐로먼 브러더스사에서 이루어졌다.

이 만남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은 하버드대 교수를 그만두고 메리웨더 사단에 합류한 머튼의 제자 에릭 로젠펠드였다.

로젠펠드는 먼저 스승인 머튼을 설득해 샐로먼사의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그 후 스탠퍼드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숄즈 교수도 로젠펠드의 중재로 샐로먼에 합류했다.

두 교수는 메리웨더가 채권 사기 사건으로 샐로먼을 떠난 후 3년만인 94년에 설립한 LTCM의 창립 멤버로 가담, 메리웨더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두 교수는 LTCM사가 설립 초기인 95년과 96년 LTCM사가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선 세일즈맨으로서 회사가 초기 단계에 필요로 했던 엄청난 자금을 끌어 모으는데 앞장섰다.

숄즈 교수만 하더라도 1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모아 LTCM에 쏟아부었다.

국제 금융시장도 블랙.숄즈 이론이 잘 들어맞는 여건이 형성돼 LTCM은 96년까지 승승장구했다.

LTCM은 덕분에 연 40% 이상의 엄청난 수익을 올릴기도 했다.

당시 LTCM의 ''대박''을 가능케 했던 병기(兵器)는 ''컨버전스 트레이딩(convergence trading)''이라는 기법이었다.

이것은 조건이 비슷한 두개의 투자 대상이 현격한 가격차를 보일 때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두는 일견 평범한 기법이다.

정상적인 금융시장에서는 가격이 일치하는 추세를 나타내므로 그 차액을 겨냥하는 것이다.

LTCM은 특히 연방 재무부 채권(TB)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예컨대 ''A''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새로 발행한 30년 만기 TB를 사고,동시에 ''B'' 은행에서 돈을 빌려 29년 만기 TB를 사는 식이었다.

그 후 두 채권의 가격이 비슷해졌을 때 29년 만기 TB를 팔아 차익을 챙겼다.

물론 이 투자 기법도 가격차가 벌어질 경우 예상되는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블랙.숄즈 이론을 바탕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블랙.숄즈 이론이라도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제대로 작동했다.

이성적이면서 합리적인 시장참여자들로 구성된 지극히 정상적인 시장에서만 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모라토리엄 등 예외적인 변수가 잇따라 발생하자 이 이론은 맥을 못추고 무너졌다.

노벨 수상자의 명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면서 LTCM을 파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비운''의 종말을 맞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