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지방의 한 플라스틱용기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47세의 알랭은 4명의 자식을 둔 가장이다.

실업률이 전국 평균치를 웃도는 지역이지만 부인도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어 남부러울 게 없다.

그에겐 그러나 큰 고민이 하나 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까막눈이라는 사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맹이 생활에 좀 불편하긴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회사의 생산설비가 컴퓨터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간단한 데이터만 입력하면 되는 단순업무지만 그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엔 주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업무를 꾸려왔지만 곧 한계에 부딪쳤다.

결국 지난달 말 알랭은 인사과를 찾아가 자신이 문맹이란 사실을 고백했다.

다행히 문맹퇴치소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조건하에 해고를 면했다.

그는 이달부터 매주 2회 일찍 퇴근,불어수업을 받는다.

프랑스에는 알랭과 같은 문맹자가 한 둘이 아니다.

프랑스 노동부 산하의 문맹퇴치기구(GPLI)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성인 문맹자수는 5백만명을 넘는다.

프랑스에서 문맹퇴치 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79년.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맹자수는 거의 줄지 않고 있다.

문맹문제는 오랫동안 사회적인 금기로 취급돼 정부나 사회단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맹퇴치기구는 2년전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주는 ''세종대왕상''을 받았다.

이 상은 한국정부의 후원으로 유네스코가 매년 문맹퇴치에 공을 세운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당시 프랑스 상원에서 시상식이 거행됐지만 프랑스언론은 모두 모른 척했다.

문화대국 프랑스의 언론들은 국민의 상당수가 문맹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들어 프랑스의 시각이 바뀌었다.

언론들은 문맹문제를 공론화하고 교육부는 문맹퇴치를 2001년의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재정부는 문맹퇴치를 위해 7천만프랑의 특별예산을 수립했다.

요즘 국립 직업소개소 게시판에는 무료 불어강의 안내가 구인광고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