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7일 아침.

더크 야거(57) P&G(프록터&갬블)회장은 "99기업회계연도 3.4분기(1~3월)의 주당 순익이 10%가량 감소할 것 같다"는 파발문을 월가에 띄웠다.

물론 장기비전은 밝다는 사족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P&G주가는 이날 87.44달러에서 60.06달러로 31%나 폭락했다.

상장이후 최대 낙폭이었다.

하룻새 날아간 싯가총액만도 3백50억달러나 됐다.

기저귀 비누 치약 세제 등을 생산하는 1백63년 전통의 세계적 생활용품업체 P&G의 자부심은 깡그리 뭉개졌다.

P&G를 알짜배기 "글로벌기업"으로 만들겠다던 야거회장의 야망도 산산조각났다.

언론들은 이날 주가 폭락사태를 ''야거 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유죄판결''이라고 단정지었다.

무능한 CEO(최고경영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는 결국 CEO에 오른 지 17개월 만인 지난 6월8일 무대 뒤로 사라졌다.

P&G 창업 이래 최단기 CEO라는 불명예를 안고서.

99년 1월 존 페퍼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CEO에 오른 야거 회장은 침몰하는 거함 P&G를 살려낼 구세주로 여겨졌다.

개혁과 스피드경영의 최적임자라는 찬사도 한몸에 받았다.

80년대말 일본P&G부사장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일본시장을 석권하는 발군의 경영능력을 발휘했던 화려한 과거도 있는 터여서 그에 대한 기대는 컸다.

야거 회장은 취임직후 ''Organization2005''라는 개혁프로그램을 단행했다.

2005년까지 1만5천명을 해고하고 19억달러의 비용절감을 이룬다는 내용이었다.

7년 안에 매출 6백60억달러의 초거대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덕분에 주가도 주당 1백20달러에 육박하는 사상최고치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개혁전도사'' 야거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급격한 체질개선 전략은 직원들의 불만을 키워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타이드(세제) 크레스트(치약) 팬틴(샴푸) 등 주력제품은 갈수록 경쟁제품에 밀려났다.

때마침 제지와 석유제품 등 원재료 가격 상승과 물류비 급증 등이 겹쳐 수익이 급격히 나빠졌다.

무차별적인 M&A(인수합병)로 사세를 키우려는 구태의연한 확장 전략도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애견식품업체와 정수기업체 등을 마구 인수했다.

월가는 "3백여개의 브랜드를 재정비해 발등의 불인 단기적인 수익개선에 주력하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급기야 ''미친 더크(crazy man Duck)''라는 별명을 월가로부터 선물(?)받았다.

미친 더크,그는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의 조급증을 감싸 안는 조화와 임기응변이라는 CEO의 기본덕목 부족으로 단명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