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25일.

세계최대 음료회사인 코카콜라 창립 1백주년 기념식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

더글라스 아이베스터 회장(53)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는 최악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아시아등의 수요증가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말로 분노한 주주들을 달랬다.

그후 9개월이 채안된 99년 12월6일,그는 취임 2년여만에 전격적으로 사임의사를 밝혔다.

"수없이 번뇌한 끝에 내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 훌륭한 회사의 대표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4월19일 더글러스 대프트 사장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쓸쓸한 야인"이 됐다.

97년 10월23일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였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회장이 폐암으로 급서한 후 아이베스터는 화려하게 거함 코카호(號)의 선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아이베스터는 곧 이 거함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의 취임후 코카콜라는 실적부진의 늪에 빠졌고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98년 7월 80달러를 넘었던 주가는 1백주년 기념일 무렵엔 65달러를 맴돌았다.

당시 코카콜라는 월가에서 ''다우지수 10,000포인트 돌파의 걸림돌''인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문화의 전도사'' ''돈버는 기계''등으로 불리며 미국의 부(富)와 문화를 상징하던 코카콜라의 명성은 이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베스터는 운도 없었다.

취임후 아시아외환위기가 터졌고 전임자 고이주에타 회장이 남겨놓은 카리스마가 너무 강했다.

특히 재직 16년간 코카콜라 주식 시가총액을 30배나 키우며 세계 최정상의 청량음료업체로 만든 고이주에타의 위명은 아이베스터에겐 큰 짐이었다.

그에겐 ''구관이 명관''이란 부담이 늘 따라다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유럽의 코카콜라 오염사건,사내 인종차별 소송 등 취임후 꼬리를 문 대형 악재가 아이베스터의 숨통을 조였다.

주변에선 94년부터 코카콜라 사장직을 맡으면서 고이주에타로부터 물려받은 ''공격적 스타일''이 그의 중도하차를 가속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코카콜라에''란 슬로건에 매료돼 안방(미국시장)을 펩시콜라에 잠식당하는 실수도 범했다.

작년 유럽 코카콜라 오염파동때 현지로 가서 사태를 즉시 수습하라는 이사회의 충고도 무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분석한 ''퇴출대상 CEO 6대증상''중 하나인 ''이사회와의 마찰''은 그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정확한 상황 판단력과 임기응변력 부족,그가 ''실패한 CEO''가 될 수밖에 없었던 최대요인이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