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초 덴마크의 칼스버그맥주는 부푼 꿈을 안고 중국 상하이에 진출했다.

한 사람에게 한 병씩만 팔아도 13억병이라는 단순 계산하에 중국을 지상 최대의 황금시장으로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칼스버그맥주는 상하이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상하이인들의 구매패턴을 읽지 못한 탓이었다.

진출초기부터 발생한 적자는 작년 한해에만도 1억위안(약 1백30억원)을 넘으면서 상하이진출 10여년만에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칼스버그는 애당초 유통의 맥을 잘못 잡았습니다. 상하이 유통구조는 서구시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제도화되지 않아 매우 문란하고 복잡한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들만의 또 다른 체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상하이에서 컨설팅사업을 하고 있는 남중희 박사의 해석이다.

그는 또 "칭다오 등 자국의 맥주맛에 길들여진 상하이인에게 다른 맥주를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상하이 및 인근 화둥(華東)지역은 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매머드급 상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소비패턴 유통구조 판매시스템 등 시장분석을 게을리한 기업에 상하이마켓은 그림의 떡이다.

상하이시장은 불나비처럼 뛰어든 기업에는 혹독한 시련만 안겨줄 뿐이다.

유통구조의 변화에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상하이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하이유통의 무게중심은 지난 2년 사이 재래시장에서 슈퍼로, 슈퍼에서 대형할인매장 등으로 급변했다.

"제조기술은 한국에서 들여오면 됩니다. 그러나 유통기법은 상하이시장에서 부딪쳐가며 배울 수밖에 없기에 더 어렵습니다"(김현준 농심상하이 본부장)

유통변화에 맞게 마켓팅조직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본부장은 유통의 맥을 잡기 위해 우선 복잡한 유통구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공급방식을 택하느냐는 영업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유통업체에 직접 물건을 공급하는 직판제로 할지, 아니면 중간상에 맡기는 대리점체제로 할지가 열쇠다.

국내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대리점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직판체제가 시장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유리하지만 유통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는 대리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전자 소주공장의 박종하 이사는 "중국유통 체제에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중간업자가 농간을 부리면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대리점의 대부분이 영세업체인터라 외상거래를 요구한다.

그들이 망하거나 사라지면 돈을 떼인다.

외국기업만 노리는 악덕업자도 많다.

이를 피하는 방법은 현금거래원칙을 철저히 지키거나 좀 비용이 들어도 직판비율을 높이는 것뿐이다.

상하이시장에서는 지금 브랜드파워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품공급이 부족했던 때는 브랜드의 의미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다양화된 지금은 브랜드가치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카콜라 IBM 폴로 등이 상하이에서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들 기업의 막강한 브랜드파워 덕이다.

따라서 아직 국제적 지명도가 낮은 우리나라 기업들로서는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한 광고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다.

"화둥시장을 다 먹겠다"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

공략할 소비층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집중 공략하는 "섹터(sector)시장전략"을 써야 한다는게 이곳 현지 상사원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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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정동헌(영상정보부) 한우덕(베이징특파원) 하영춘(증권1부) 차병석(벤처중기부) 박민하(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