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둥(浦東)지역에서도 가장 번화한 루자쭈이(陸家嘴) 금융지구.

거대한 빌딩숲을 헤쳐 나가면 중국 특유의 건물답게 가운데를 뻥 뚫어 "용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어 놓은 초현대식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상하이 증권거래소다.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웅비하고 있는 황소 모형.

한국의 증권거래소와는 달리 주가하락을 상징하는 곰 모형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주가가 오르기만 하라는 기원에서 황소 모형만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올라가면 거대한 홀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넓이만 3천6백평방m(1천1백여평), 좌석도 1천6백8석에 달한다.

아시아 최대 규모다.

바로 각 증권사를 대표하는 시장중개인의 자리다.

물론 상하이 주식거래의 90%는 이곳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외부 방문객을 위해섭니다"(우야룬.吳雅倫 증권거래소 부이사장)

실제로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이곳을 방문했었다.

황소만 있고 곰은 없는 증권거래소 로비와 오로지 방문객을 위해 운영한다는 엄청난 주식거래홀.

바로 여기에 아시아금융센터를 꿈꾸는 상하이의 의지가 담겨 있다.

황소의 모형이 상하이 금융시장의 질적인 도약을 의미한다면 거대한 주식거래홀은 외형적인 비약을 나타낸다.

상하이는 지난 1949까지만 해도 아시아 최고의 금융센터였다.

그러나 중국공산화와 함께 그 영화를 홍콩에 넘겨줘야 했다.

그로부터 40년후.

푸둥개발을 시작하면서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상하이의 도전은 막이 올랐다.

상하이를 통하지 않고는 아시아에서 돈을 움직이게 할수 없게 하겠다는 의지는 이제 상하이를 명실상부한 국제금융센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1차 걸림돌은 다름아닌 홍콩.

홍콩은 도쿄와 함께 아시아 금융시장을 호령하는 맹주다.

상하이에서 지난해 한해동안 거래된 외환액은 7백억달러에 불과하다.

홍콩의 하루평균 외환거래액(1천억달러)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이다.

"홍콩을 따라 잡으려면 20년은 족히 걸려야 할 듯하다"(루스민.陸世民 재경대교수)

그렇지만 상하이 금융시장의 발전속도를 보면 홍콩 추월은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시간일 뿐이다.

"동서무역의 중심항이던 베니스가 15세기 희망봉 발견으로 수명을 다한 것처럼 홍콩도 양쯔강 델타의 상하이에 그 역할을 넘겨줄 것"(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이라든가, "금융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상하이의 노력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오는 2010년 홍콩을 능가할 가능성이 많다(세계은행)"는 전망들은 상하이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상하이는 국제금융센터를 위한 하부구조를 착실히 갖춰 가고 있다.

지난 90년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문을 연데 이어 외환교역센터(94년), 단기자금시장(96년), 채권시장(97년)이 차례로 개장했다.

지난 1996년엔 외국계은행에 인민폐영업도 허가됐다.

이러다보니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상하이로 몰려들고 있다.

미국의 시티뱅크와 홍콩상하이은행은 중국본부를 아예 홍콩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지난해말 현재까지 미국의 AIG그룹을 비롯, 1백86개의 내로라하는 외국 금융기관이 차례로 상하이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상하이는 홍콩을 경쟁상대로 꼽지 않는다.

어엿한 중국 영토인 홍콩의 추락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상하이 전신탑에 홍콩의 별칭인 "동방명주"라는 이름을 직접 써붙일 때부터 상하이의 홍콩 따라잡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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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정동헌(영상정보부) 한우덕(베이징 특파원) 하영춘(증권1부) 차병석(벤처중기부) 박민하(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