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북경)에는 비디오 가게가 없다.

물론 일반 가정에 VTR(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도 없다.

대신 그들은 컴퓨터 또는 DVD로 VCD(영상CD)를 돌려 영화를 본다.

시내 쇼핑센터와 거리에서는 10위안(약 1천3백원)짜리 복사판 VCD가 인기다.

중국 홈(가정)영상기술이 VTR를 거치지 않고 VCD단계로 도약한 것이다.

중국 기술이 특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

중국에는 "시티폰"개념의 이동통신이 없다.

삐삐(무선호출)에서 핸드폰(이동전화)으로 직접 넘어갔다.

컴퓨터 모니터의 주류가 13인치에서 15인치 단계를 뛰어넘어 17인치로 이동하는 중이다.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리눅스가 윈도를 따돌리고 컴퓨터 운영체계(OS)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업홈페이지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상거래가 꽃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정부가 선진기술 도입의 결정권을 쥐고 있기에 가능했다.

중국정부는 앞서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술을 선택한다.

민간기업들은 정부가 지정한 기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중국의 기술 정책을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대(대)중국 기술수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게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분야다.

중국 주룽지(주용기) 총리는 최근 "CDMA도입은 당초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CDMA 도입 일정은 짙은 안개에 쌓여있다는 게 베이징 상사원들의 얘기다.

중국이 머뭇거리는 이유가 바로 기술 단계다.

담당 부처인 중국신식(정보)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어떤 단계의 기술을 도입할지를 검토중"이라고 했다.

삼성 현대 등 우리나라 기업이 갖고 있는 제2세대 CDMA를 뛰어넘어 제3세대 CDMA(TD-SCDMA)를 도입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삼성 중국본부 관계자는 "중국이 제3세대 CDMA로 통신정책의 가닥을 잡는다면 우리는 중국진출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CDMA 뿐만이 아니다.

모든 산업에서 중국정부의 기술정책을 파악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중국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손(시장논리)"보다는 "보이는 손(정부정책)"이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