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0년 호황"에 제동이 걸리는가.

그동안 미국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미 증시가 돌연 급락세로 돌아섬에 따라 향후 미국 경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주가 급락이 "신경제"의 견인차였던 인터넷 등 첨단 기술관련 기업들의 급격한 몰락을 야기,자칫 미국 경제 전반의 "경착륙(hard-land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한주동안 나스닥지수가 25.3%, 다우존스 지수가 7.3%씩 하락하며 사상 최악의 낙폭을 기록하는 사이에 증발된 주식 자산은 대략 2조달러에 달한다.

미국인 1인당 7천달러씩에 해당하는 거액이 불과 닷새 사이에 날아가버린 것이다.

미국 경제가 세계적인 외환 위기의 와중에서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증시의 활황 지속과 이에 힘입은 미국인들의 활발한 소비 덕분이었다.

완전 고용과 저물가의 공존이라는 이른바 "신경제 기적"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증시의 돌연한 "우 하향 커브"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연결돼 미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는 여기에 기인한다.

증시 침체는 또 신경제의 중심축을 이뤄 온 첨단 기업들의 밑둥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미국의 첨단 벤처기업들이 증시 상장 및 벤처 캐피털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작년 1월 이후에만도 1천5백여억달러에 이른다.

첨단 기업들은 이렇게 확보한 돈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통신 장비 등을 구입해왔다.

월가 투자회사인 회니그사의 로버트 바버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텔과 컴팩, 루슨트 테크놀러지스 등 유력 업체들도 증시 급락으로 인해 연구개발 투자 등에 차질을 빚게 될 게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이 이와 함께 우려하는 것은 미 달러화 가치의 급락 가능성이다.

지난 몇 년동안 미국의 무역적자가 급속히 확대돼 왔음에도 달러 가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황을 보여온 미국 증시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됐던 덕분이었다.

물론 이런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 증시가 아직 "최악"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스닥지수는 최근 한달여 동안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우존스 등 다른 지수는 말할 것도 없다.

단타 매매를 하는 비정상적인 투자자가 아닌 한 주가 하락으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고용, 성장, 재고 등 미국 경제의 각종 지표들도 여전히 견실하다.

미 주가가 지난 몇 년동안 지나치게 상승, 어차피 한번은 대조정이 불가피했던만큼 실물 경제가 탄탄한 상황에서 조정을 받는 것은 "위장된 축복"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건 스탠리 증권의 바이런 윈 투자분석위원은 "비이성적 수준으로까지 하늘높이 치솟았던 미국 기업들의 주가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당연하다"며 "당분간 더 하락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