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큰손은 결국 공직자였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주테크가 도마위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행사일 뿐"이라고 항변을
늘어놓고 있다.

"직무상 얻은 기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득을 얻을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법 조항을 소극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공직자의 윤리규범 강화를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한다고 하지만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어느 나라건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위공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결국 내부정보(insider information)를 생산하는 주체이다.

''내부정보=큰돈''이라는 등식에서 보면 땅 짚고 헤엄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한마디는 바로
엄청난 돈으로 연결된다.

금리를 내릴 예정이라면 채권을 사 두었다가 금리인하 영향으로 채권값이
오르면 내다 팔면 된다.

당장 큰돈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려는 경우에도 돈 벌기는 식은 죽 먹기다.

채권을 공매(short sale) 했다가 나중에 싼값에 채권을 사들여 다시
채워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린스펀 주변에 있는 FRB 위원들 또한 이같은 엄청난 내부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는 마찬가지다.

공직자 윤리규정(Ethics in Government Act)에 따라 미국인들은 공직을 맡기
전 자기의 더러워질 수 있는 큰 손 부터 깨끗한 손 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손 털기 작업은 대통령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법원장의 주문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고 나면 백악관에
들어가는 미국 대통령은 맨손으로 입주해야 한다.

주식이나 채권등 금융자산은 일단 자기 손에서 깨끗이 털어내고 이를
투자신탁회사 등에 맡겨야 한다.

이른바 "나몰라 펀드"라고 불리는 폐쇄펀드(Blind Trust)에 서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규정에 따라 대통령은 자리를 그만 둘 때까지는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됐는지 조차도 문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임기 4년 동안 나몰라라 하고 있어야 한다.

돈이 어느 어느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면 공직에 앉아
있는 동안 그 주식들의 값을 올리기 위해 그릇된 정책적 선택을 할 유혹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의 싹을 아예 처음부터 자르자는 것이 나몰라 펀드 제도의
취지다.

나몰라 펀드는 FRB 의장이나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다.

부통령은 물론, 장관, 그리고 군장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고위공직자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끈 매지 말라는 조언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즉각 도입해봄직한 나몰라 펀드 야말로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표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