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 호황 국면이 사상 최장인 1백7개월째에 접어들자 방송과
신문들은 인플레없는 장기 호황이라는 "신경제의 기적"을 조명하는
특집으로 부산을 떨었다.

일부 언론은 초장기 호황 레이스를 전설적 야구 스타인 고 조 디마지오가
지난 1941년에 세운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과 비교하기도 했다.

디마지오의 기록에 따라붙는 수식어처럼 요즘의 미국 경기 확장 페이스도
"불멸"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꺼풀을 벗겨보면 미국 경제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들이 만만치
않게 드러난다.

경기 활황과 비례해 늘어만 가고 있는 무역적자가 그렇고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미국의 두통거리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에 따르면 미국내 비금융 기업들은 작년 3.4분기
동안에만 4조2천억달러의 빚을 끌어다 쓴 것으로 돼 있다.

전년 동기에 비해 12%나 늘어난 규모다.

지난 5년간 기업들의 차입금은 60%나 늘어났다.

미국 기업들의 빚을 모두 합치면 GDP(국내총생산)의 46%에 이른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가계의 빚 끌어쓰기도 이에 못지 않다.

작년 3.4분기 동안 가계의 평균 차입금이 연율로 9% 늘어났다.

최근 5년간 50% 증가했다.

임금 소득자들의 평균 수입 증가율도 6.7%로 차입금 증가분에 못미쳤다.

미국의 가계와 기업들이 이처럼 빚을 마구 끌어 쓰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와 증시 및 부동산 활황 등에 따른 "채무 불감증" 때문인 것으로
설명된다.

많은 기업들이 차입한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고 개인들
역시 은행 빚을 얻어 집을 장만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행이다.

문제는 이런 "빚더미 살림"이 언제까지 유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에게 "부의 효과"를 안겨줘 채무를 두려워않게 만든 증시 붐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음은 불문가지다.

기업과 가계의 부채는 언젠가 경제 전반에 큰 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예고돼온 대로 미 통화당국은 2일 기준금리 인상 조치를 단행했다.

경기 과열을 사전에 예방해 보려는 고육지책의 산물이었다.

햇볕날 때 비오는 날을 대비하라는 옛 격언이 되새겨지는 요즘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