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경찰)들은 열광하는 "오빠부대"를 자리에 앉히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소리도 쳐보고 험상궂은 얼굴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공안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흥분한 청소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이 터져라 "에이치오티"를 외쳐댔다.

공안들은 결국 무대쪽으로 몸을 돌려야 했다.

무대에서는 H. O. T 의 현란한 춤과 음악, 레이저 쇼가 어우러져 있었다.

지난 1일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열린 H. O. T 공연에서는 1만3천여명의
청소년들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들은 H. O. T 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괴성을 질러댔다.

이날 공연은 다른 어떤 공연보다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1만2천장의 티켓은 공연 3일전 완전 매진됐다.

티켓 98%가 중국인에게 팔렸다.

"이번 춘절(설) 최고 선물은 H. O. T 공연 티켓"이라는 말이 중국 언론에서
나올 정도였다.

중국 청소년들이 H. O. T 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H. O. T 가 그들의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관료주의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으로 얼룩진 암울한 사회현실로
찌들어있다.

그런데도 불만을 표출할 창구가 없다.

1989년 톈안먼(천안문)사태 이후 중국 록음악은 지하로 숨어야 했다.

조선족 록가수 최건이 활동을 중단한 것도 이때다.

그들은 결국 H. O. T 음악에서 "경직된 사회로부터의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H. O. T 뿐만 아니다.

클론 안재욱 유승준 등 많은 가수들이 중국 음반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베이징 라디오방송은 1주일에 이틀, 각 1시간30분씩 한국노래만을 틀어준다.

"일본 댄스곡은 깊이가 없고, 홍콩과 대만 댄스곡은 리듬이 약하다. 반면
한국의 댄스곡은 힘 리듬 깊이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이곳 음악가들은
평가한다.

한국음악이 중국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H. O. T 는 이번 공연수익 외에도 중국에서 정품음반 약 40만장을 팔았다.

우리나라 문화상품이 중국에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상품은 경제효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최소한 이날 공연에 모인 중국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다.

공연장 옆자리에 앉았던 한 중국 소녀는 "어떻게 하면 한국말을 쉽게 배울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는 곧 한.중 교류협력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H. O. T 공연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실감시켰다.

<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