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경제 이론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는가.

미국의 신경제 회오리가 금융통화 분야의 전통적인 이론 틀마저 뒤흔들고
있다.

통화당국의 잇단 금리 인상 등 긴축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기 확장 페이스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6개월새 세차례나 오른 금리가 내달초 또 다시 인상될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도 시장의 열기는 식을 기미조차 없다.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은 금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미국에 관한한 그건 옛날 얘기다.

잠시 조정되는가 싶던 증시와 주택시장이 다시 활황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가계의 소비 심리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재래 경제를 뒤집는 신경제의 이론 혁명이 마침내 금융통화 분야에까지
파급된 것이다.

지난 세기말 미국의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완전 고용과 저물가, 견실한 성장
등의 공존을 놓고 신경제 현상이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그 신경제 현상에 또 하나의 화두가 추가된 셈이다.

미국 경제는 내달로 경기 확장 국면이 1백7개월째에 접어들면서 최장 호황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지난 91년 4월에 시작된 현재의 호황 주기는 햇수로 10년째에 접어들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 호시절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는 황금의 60년대(호황
기간:61년2월~69년12월)를 능가하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런 초장기 레이스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에 피로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이론의 틀을 깨는 신경제 반란만이 계속되고 있다.

반란은 실물 부문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금리 인상은 몇 달의 시차를 두고 시장에서 긴축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이론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지금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 등 통화 당국자들의 처방대로 연착륙의 코스를 밟고 있어야 한다.

기준금리인 연방 기금금리를 인상 기조로 돌려세우기 시작한 때가 작년
6월이다.

이후 세차례에 걸쳐 금리를 총 0.75%포인트 인상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일련의 발언을 통해 올해 중반까지 최소한 2~3차례의 추가
인상이 뒤따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정도라면 시장은 최소한 꿈쩍하는 기미라도 보였어야 한다.

연초 조정을 겪었던 주가는 좀더 거품을 빼야 한다.

소비시장과 주택경기도 숨을 골라야 하고, 고용시장도 조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우선 주식시장의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르고 있다.

미국 증시는 나스닥 지수가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우 지수를 비롯한 주요 주가도 흐름상 상승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분명히 주식 투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마인드는 확연히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주식 투자를 통해 최소한 15~20%의 수익률을 자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몇% 올려봤자 돈줄기의 물꼬를 바꿀 수는 없다
(잭 부루지엔 코메르츠방크 시카고 부지점장)는 것이다.

실물 부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내 고용시장에서는 31만5천명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됐다.

전월에 비해 40%나 늘어난 규모다.

소매 판매고 역시 5.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햇동안의 소매시장 증가율은 84년 이래 15년만의 최고치를 나타냈다.

소비자들의 경기 신뢰도는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 AOL, 애플 등 주요 기업들의 4.4분기 순익도
급증세를 나타냈다.

MS는 순익규모가 분기 기준으로 사상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AOL도 전년동기
대비 3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

미국 소비 경기를 가늠케 하는 양대 지표인 컨퍼런스 보드의 소비자 신뢰
지수와 미시건대의 소비자 감성지수 역시 최근 사상 최고 수준에 올라서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미국 소비자들의 3분의 2가 올해 금리가 인상 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경기를 신뢰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통화당국의 금리 처방이 더 이상 경기를 다스리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징표다.

미국 유수의 이코노미스트인 크레디 쉬스 퍼스트 보스턴사의 로잔 칸도
최근 내놓은 2000년 경기 예측 보고서에서 금리와 성장률이 같이 높아질
것이라는 파격적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통화금융 조치를 무색케 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통화당국인 FRB 무용론으로까지 비약시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FRB가 그동안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미국 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과열로 치달았을 것(월 스트리트 저널 18일자)이라는 시각이 보편적
이다.

또 지난해 6월 이후 지금까지 단행된 세차례의 금리 인상은 지난 98년
세계적인 외환 위기를 딛기 위해 FRB가 세번 인하했던 금리를 원상복귀한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경기를 추스르기 위한 본격적인 금리 인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경제가 10년 호황을 구가하면서 체질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 통화당국은 더 이상 재래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둔 처방만으로는 경기를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가 최장 호황 신기록의 테이프를 끊는 내달 1일, 미 통화당국은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향후의 금리 정책을 논의한다.

이론과 현실의 세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재래 경제와 신경제의 대결이
갈수록 불을 뿜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