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새 천년의 첫 시각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 소리가
울려퍼지던 시각, 뉴욕의 한복판에서도 징소리가 신명나게 울려 퍼졌다.

맨해튼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타임 스퀘어 광장.

이곳 시간으로 31일 오전 10시가 되자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한국 풍물패들의 사물놀이 장면과 함께 ''굿모닝 코리아''라는 자막이 화면을
장식했다.

뉴욕 사람들이 웬 일로 한국의 새해맞이까지 시간에 맞춰가며 축하해
주는가 하는 의문이 절로 나올 법 했다.

하지만 타임 스퀘어에서 챙겨준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지구촌에서 시간대가 가장 빠른 피지와 키리바티에서 새 천년의 날이 밝혀진
31일 오전 7시(뉴욕 시간)에 시작된 타임스퀘어의 글로벌 뉴 밀레니엄 맞이
행사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새천년의 동이 튼 1일 새벽 6시까지 만 24시간
동안 각국 행사를 소개한다.

이 거대한 잔칫판은 세계 주요국의 TV 네트워크를 타고 10억여명에게 위성
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이벤트를 자국에 국한시키지 않고 지구촌 전체를 보듬어
안는 스케일을 발휘한 미국 사람들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이런 궁금증은 새천년 언저리에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뉴 밀레니엄 이슈로
부쩍 제기하고 있는 21세기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세기가 될 것인가 하는
화두와 맞물려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최근 며칠간 미국 주요 신문들의 사설 등 오피니언 기사를 엮어보면 그에
대한 미국 주류지식인들의 속내가 금방 읽혀진다.

미국의 세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월 스트리트 저널 12월 27일자)와
아시아의 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뉴욕 타임스 12월 29일자)라는 글은
주장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결론은 한가지다.

소프트, 지식 산업이 여전히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좌우할 21세기에서 그
열쇠를 가진 나라는 아시아가 아닌 미국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는 얘기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창의성과 다원주의이며, 그런 흐름에는 유교적
효율주의에 젖어 온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다인종 사회에서 이문화에 대한
포용과 개인적 가치 등을 존중해 온 미국이 여전히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다분히 그런 자신감과 승리주의의 반영이었을 타임 스퀘어의 뉴 밀레니엄
새해맞이를 지켜보는 감회는 복잡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