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취임한 압둘라흐만 와히드 국민각성당(PKB)
당수(59)는 지난 6월 총선에서 당을 인도네시아 제3당으로 도약시킨
인물이다.

한쪽눈이 안보이고 건강도 좋지 않은 신체적인 한계를 딛고 대통령이 됐다.

그는 3천만명의 회원을 가진 인도네시아 최대의 회교조직인 "나흐들란툴
울라마"를 이끌고 있다.

구스 두르라는 애칭으로 대중에 더 잘 알려진 압둘라흐만은 민주 개혁과
함께 종교 및 민족적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온건파 회교지도자다.

그러나 정치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정부와의 정면대결을 피해왔다.

관용을 내세운 정치관 덕분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민주투쟁당 후보처럼
정적이 많지 않은 것이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와히드는 당초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B J 하비비 대통령과 야당지도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여사의 위세에 눌려 당선과는 관계가 없이 대권의
향배에만 영향을 미치는 "킹 메이커"로 평가됐으나 하비비의 중도사퇴와
여성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에 힘입어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는 특히 인도네시아 2억 인구의 90%가 회교도인데다 메가와티의 대통령
자질론 논쟁에 반사이익을 톡톡히 본 것으로 전해졌다.

온건성향의 회교 지성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와히드는 정치적으로는
시류에 지나치게 영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4년간 지속된 수하르토의 철권통치 시절에 그는 능란한 정치적 줄타기로
살아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때문에 비판자들은 그를 "정치적 원칙이
없이 순풍을 따라 배를 항해하는 선장과 같다"고 혹평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와히드는 수하르토 장녀의 정치적 입지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메가와티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동자바지역 좀방의 유명한 회교 가정에서 출생한 와히드는 카이로 대학에서
아랍학으로 학위를 받은 뒤 바그다드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와히드는 과거 뇌졸중으로 인한 시력장애 후유증을 겪고있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