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대 도시인 시카고 도심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그레이슬레이크라는 위성도시가 나타난다.

평야지대인 이 도시 외곽에는 3백ha에 달하는 대형 전원주택단지가 있다.

"페러리 크로싱"이라는 곳이다.

이곳에는 드넓은 초원 속에 3백17채의 단독주택이 그림같이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초원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는 수영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호수가 놓여 있다.

승마를 즐기는 주민들을 위한 승마장, 유기농장 등도 한켠에 마련돼 있어
풍족함을 더해준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겐 마치 "생태공원"으로 보일
정도다.

이 마을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의 내력을 알고 나서는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마을에서 불과 1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2곳의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 곳은 6년전에 매립을 마친 채 조그마한 민둥산으로 남아있고 다른 한
곳은 2010년까지 예정으로 매립을 진행중이다.

쓰레기 매립장 코앞에 "생태마을"이란 간판이 어떻게 내걸릴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곳의 분양열기는 오히려 달아오르고 있다는 게 주택분양회사의
설명이다.

이미 40채를 팔았으며 집값도 강세라는 게 마이클 샌드 환경담당팀장의
설명이다.

33평 규모의 작은 주택값이 최근 15만4천달러에서 20만달러로 올랐다고
한다.

"쓰레기마을"이 "생태마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서로가 믿었다는 것이다.

바로 "신뢰"였다.

주택분양회사는 이곳의 내력과 환경친화적인 건설방향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매립장에 대한 주기적 모니터링으로 주민들의 불안의식을 잠재운 것은
물론이다.

행정당국도 기차역을 신설하고 매립지의 공원화 계획 등을 통해 마을이
뿌리내리도록 거들어주었다.

"눈속임"없는 분리수거와 체계적인 매립장관리로 "매립장=혐오시설"이라는
등식이 이곳에서는 깨졌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내가 보듬고 살아야 하는 시대.

"페러리 크로싱"은 새 밀레니엄의 환경정책을 미리 보여주는 사례다.

내 땅에 혐오시설은 절대 안된다는 "님비현상"이 적어도 이곳에서는
발붙이지 못했다.

쓰레기 문제는 "솔로몬이 환생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한국의 풍토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현장이다.

< 시카고=남궁덕 특파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