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때의 일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의례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채점이 잘못됐다고 불평하러
오기 일쑤다.

필자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약점을 노려 1점이라도 더 받아보려는 저의가
분명한데도 단어만 달랐지 본뜻은 모범답안과 같은 것이라고 우겨댄다.

내 영어가 모자라서 그런 모양인데 다른 교수들과 상의, 정말 그런 뜻이라면
수정해주겠다며 달래보낸다.

다른 미국인 교수에게 물어보지만 그것은 오답임에 틀림없다.

괘씸한 흥정에 대한 앙갚음(?)이 시작된다.

혹시라도 점수를 후하게 준 부분이 없는가 꼼꼼히 살펴 더 깎아 내릴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혹 떼러 온 학생에게 혹 하나 더 붙이겠느냐고 물으면 학생들은 순순히
답안지를 회수해 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혹 붙이고 갔던 학생 하나가 다시 찾아왔다.

이 얘기 저 얘기 변죽만 울리던 그가 갑자기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데 당신도 먹느냐 고 묻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역습에 황당무계해지지만 한국인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침착하게
대응한다.

나는 먹지 않는다고 거짓말부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국인들이 흔히 써먹는 그럴싸한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자기가 키우던 개를 잡아먹는(우리 중에는 분명 그런 사람도
있지만)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식용개가 따로 있다.

미국에는 돼지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

이 사람이 돼지고기를 어떻게 보겠느냐.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인들이 쇠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러시아 툰드라 산 말고기를 최고의 요리로 치는 프랑스인들을 어떻게
봐야하느냐.

남의 음식에 대한 비판은 편견이거나 문화적 모욕(cultural insult)일
뿐이라며 변명을 끝낸다.

그러나 한국 보신탕집에 가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개고기예찬론의
뒷부분을 그대로 반복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내 얘기를 듣는 학생도 쉽게 설복되지 않는 눈치다.

다만 선생 앞이니 더 이상 반발하지 않는다.

어찌됐건 휴전이 성립된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20명이 개를 가축의 범주에
포함시켜 개고기 유통을 합법화하는 것을 골자로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김 의원은 유통되는 개고기의 위생상태가 엉망인 것이 문제 라며 외국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보호 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의원은 개고기 반대 운동을 벌여온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드 바르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개고기식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분명 개도 식용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촌 이웃이 치를 떨며 싫다는데 구태여 법까지 개정해가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지구촌 이웃의 정서를 너무 모르거나 외면한
소치에 불과하다.

수술받는 개 옆에서 울고 앉아있는 이곳 사람들의 눈물을 위선으로
치부해버리기엔 이들의 태도나 자세가 너무도 진지하다.

개가 없어지면 적지않은 돈을 내걸며 "개 찾습니다" 광고를 온 동네방네
붙이고 다니는 이들의 애절한 표정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잘
모른다.

프랑스 여배우가 김의원의 편지를 계기로 한국인에 대해 더 심한 독기를
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경제가 문 걸어 잠그고 혼자 살 수 있는 자족체제와 능력이 있다면
모른다.

하지만 국가의 생존이 이웃과의 화목과 말끔한 이미지구축에서만 가능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남의 사시를 받을 수 있는 개고기문화를 애국으로
위장하거나 과장하는 돈 키호테식 입법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만 고집하고 둘은 모르는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이다.

6.25 전쟁당시 우리를 도와준 터키인들이 참혹한 자연재해를 당하자
지구촌의 모든 국가들이 자기일처럼 물심양면 발벗고 나선 데 비해 달랑
7만 달러를 내놓은 것이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이자 지구촌시민의식
수준이다.

우리가 OECD회원국이자 세계 11대 경제대국임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심 쓰고 따귀 맞는다는 것은 이런 때 쓰는 표현이다.

한국인들이 왜 아직도 지구촌의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는가 곰곰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개고기와 7만달러야 말로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 워싱턴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