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임한 K은행 뉴욕 사무소장은 요즘 이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본점 지시에 따라 뉴저지 사택을 매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새로 렌트할
집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택은 매물로 내놓은 당일로 5명의 원매자가 나타났고 이 덕분에 그는 사택
을 당초 제시했던 가격에 웃돈을 받으면서 다음날 곧바로 팔아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렌트를 구하는 입장이 돼보니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맨해튼에서 출근 가능한 거리에 있는 뉴저지나 코네티컷주의 웬만한 주택들
은 렌트 물건이 나오기 무섭게 바로 계약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S기업 주재원 L차장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그는 2년째 살던 집을 두달 내에 비워줘야 할 처지다.

주인이 잡을 팔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 집들의 렌트 시세가 최근 몇 달새 20% 안팎씩 턱없이 오르는
바람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칸짜리 단독 주택은 월 렌트가 최소한 2천5백달러를 훌쩍 뛰어넘고 웬만한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도 매달 2천달러 안팎은 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재원들이 겪고 있는 주택 대란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경기 활황
이다.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장기 호황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미국인들 사이에
내집 장만하기 붐이 일고 있고 그 여파로 주택 매매는 물론 렌트 물건까지
부르는게 값이랄 정도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전미 부동산 중개업협회에 따르면 95년에만 해도 10만달러를 조금 넘는 정도
였던 미국내 평균 주택 가격이 최근에는 13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나마 이건 미국 전체 평균일 뿐이고 뉴욕 같은 대도시의 평균 주택값은
최소한 20만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부동산 경기가 뜀박질을 계속함에 따라 경제계 일각에서 제기돼 온
거품 경계론이 한층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 경제 활동의 4.5%를 주택 건설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가구
와 전자제품 중 각종 주택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미국 경제의 10% 이상이
부동산 부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최근 연준리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금리 인상 등 부동산 경기에
부정적인 조치가 가시화되는 날이면 거품이 순식간에 꺼져 버릴 수 있고 이는
자칫 미국 경제 전반의 후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경쟁의 최전선에 나와 있는 주재원들은 이래도 고통 저래도 걱정일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