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와 계열"

언뜻 보기에 상극처럼 느껴지는 두 단어가 벤처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
에서 어울리기 시작했다.

하이테크기업들간에 매수합병 제휴 출자가 복잡하게 진행되면서 벤처기업계
에 인맥의 계열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창업이후 일정 시일이 지나면서 수성의 단계로 들어간 벤처기업가들
에게는 인맥을 쌓는 일이 곧 사업기회를 확장시키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 주간경제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호(5월31일자)에서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가들이 계열화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경향은 실리콘밸리가 본격적인
기업도태의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PC포럼은 이들 벤처기업가들이 새로운 투자처를 발견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떠올랐다.

지난 3월에 열린 포럼이 22회째나 되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포럼은
벤처기업가들의 친목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들어 포럼의 성격은 완전히 "내편을 찾는 자리"로 변모했다.

이번 포럼의 참가자는 인텔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아마존등 이미 어느정도
정상을 굳힌 기업의 경영진을 포함, 6백70여명에 달했다.

포럼의 주최자인 에스터 다이슨씨는 "제품구입과 같은 상담은 너무 구태의연
하다"면서 "투자나 제휴상대를 찾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텔은 이미 한해 1백여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실리콘밸리 최대의
투자회사"로 불려지고 있다.

또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 회장의 경우도 실리콘밸리에서는 단순한
벤처기업가가 아니라 "뛰어난 후각을 가진 투자가"로서 명성이 높다.

PC포럼이 한자리에 모여 인맥을 넓히는 형태인데 비해 전문적으로 제휴처를
찾아주는 중개회사도 속속 대두되고 있다.

크라이너 파킨스로 불리는 회사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네트스케이프 아마존등을 키워낸 업계 최고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씨 등이 일하고 있다.

지난 3월 델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PC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회사를 설립한 것은 아마존과의 제휴를 통해 이뤄졌다.

이 때 양사의 회장인 마이클 델과 제프리 베조스를 연결시킨 게 바로
크라이너 파킨스였다.

크라이너 파킨스는 홈사이트에 "계열"이란 한자어를 새겨넣고 자신들이
투자한 1백여개 회사의 제휴상대를 찾아주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애플컴퓨터출신의 가이 가와사키씨가 독립해서 하는 일은 사업계획을 가진
벤처기업가와 투자회사를 연결시켜주는 작업이다.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3백개 이상의 하이테크기업과
경영자들이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로 가와사키의 인맥과 정보을 높이 산 것이다.

이처럼 벤처기업가들이 인맥을 중시하는 경향은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인터넷으로 직접 서적을 구입케 하는 예에서와 같이 고객들은 인맥을
버리도록 유도하면서 자신들은 더욱 더 공고한 인맥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