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이 정식으로 사임한다는 사실이 12일 공식 발표
됐다.

그간 심심치않게 떠돌던 그의 사임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인사가 있으면 으레 새로 임명된 사람이 누구냐에 관심이 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이날 월가와 언론의 관심은 로렌스 서머스 차기지명자
보다는 루빈 사임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경제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미국에서는 한 개인의 진퇴가 큰
의미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백악관 뜰에서 거행된 사임발표장에서 빌 클린턴은
루빈을 역대 재무장관중 최고 수준의 능력자라고 치켜세웠다.

그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보여줬다.

루빈은 클린턴이 집권하자마자 국가경제자문단(NEC)을 구성해 클린턴의
경제정책을 설계.자문했다.

로이드 벤슨 전재무장관이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받아 멕시코위기, 아시아
위기, 러시아위기, 그리고 브라질위기 등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것은 그의
적지않은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년반동안의 클린턴 집권기간중 1천8백만개의 새 일자리 창출과, 9년
간의 지속적인 경기확장, 그리고 2%대의 물가를 실현하는데 루빈만큼 결정적
인 기여를 한 사람은 없다는 클린턴의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그의 강점은 전문지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루빈이 미국의 하버드, 예일, 영국의 LSE 등 최고 학부를 거친 것은 사실이
지만 이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금융실무를 몸에 익혔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뉴욕의 골드만 삭스에 26년간 몸을 담으면서 잔뼈가 굵은 민간부문의
실무금융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CGS & H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관념적인 암기식 일반상식에 의존하는 한국의 고시출신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물러날 때를 아는 그의 균형감각이다.

루빈은 일찍부터 사임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르윈스키 사건의 족쇄에 묶여 있던 클린턴에게 차마 말을 건넬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후문이다.

한번 잡으면 쉽게 놓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이제는 때가 됐다"며 떠나는
루빈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남는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 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