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거품인지 아닌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결과를 지켜 보는 것 뿐이다"

월가에서 나돌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주가 예측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난 몇 년간 주가 전망을 내놓은 전문가들이 줄줄이 망신만 당했기 때문
이다.

미 증시의 괴력은 다우 지수가 대망의 1만포인트를 넘어선 3월 29일 이후
더욱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4월 한달동안의 상승률이 자그마치 10.2%에 달했다.

한달 기준으로 최근 10년래 최대 상승폭이다.

덕분에 뉴욕 증시는 D11K(다우지수 11,000) 등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망의 D10K 고지에 올라선지 한달 남짓만의 일이다.

미 증시가 현재의 황소 장세 를 시작한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 10월 11일 다우존스 2,365.10포인트를 기록했던 것이 분기점이다.

미 증시는 이후 수도 없이 거품 시비의 도마대에 올랐다.

멕시코 페소화 위기(94년 12월), 태국 바트화 절하(97년 7월), 러시아
채무상환 유예 선언(98년 8월) 등 안팎의 악재와 숱하게 맞부딪쳤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이들 고비때마다 무너진 것은 증시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체면이었다.

95년말 미 증시의 활황은 끝났다며 수십억 달러의 보유 주식을 모조리
팔아치워 화제를 뿌렸던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의 매니저.

그의 장담과 달리 다우 지수가 이후에도 대세 상승을 계속하자 그는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지금까지 다우 지수의 상승률은 두 배가 넘는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도 실언자 리스트에 올라있다.

그는 96년 12월 의회에서 ''미국 증시가 비이성적 활황(irrational
exuberance)을 보이고 있다''는 유명한 경구를 화두로 내던졌다.

그러나 그 후 2년 남짓새 주가는 60%이상 뜀박질했다.

주가가 웬만큼 오르고 나면 한동안 거치게 마련이었던 조정 국면이 거의
생략된 결과다.

경제학의 기본인 주기 순환이론이 설 땅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을 추적해온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근 새로운 현상을 가설로
내놓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 MIT대 교수 등이 제시한 영구 운동
경제(perpetual motion economy) 설이 그것이다.

물리학에서 따온 이 개념은 일종의 경기 선순환 이론이다.

투자 고용 소득 소비 주가 등 경제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무한정한 상향
운동을 하면서 서로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가 상승은 투자자들의 가계 소득 향상으로 연결되고, 이는 소비
지출로 이어져 기업들로 하여금 수익을 높이고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토록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해당 기업들의 주가 상승으로 나타나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선순환의 출발점이 기업들의 고수익인지, 아니면 주가 상승이 먼저인지는
정답이 없는 논란거리다.

또 영구 운동 경제의 톱니 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 어느 하나만
삐끗해도 경제 선순환은 즉각 중단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점도 있다.

미국의 증시 호황은 세계 전반에 정보화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의 약진이라는 실체에 힘입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화 혁명은 산업 전반의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이라는 구체적 열매로
나타나고 있다.

힘차게 움트고 있는 신경제의 이런 원동력을 염두에 넣지 않은 경기 진단은
함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증시 전망을 연거푸 헛짚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기도 하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