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자(savers)가 아닌 투자자(investors)의 나라."

미국을 설명할 때 흔히 동원되는 수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계나 기업을 막론하고 은행보다 증권시장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가계가 보유한 금융 자산의 절반 이상이 직-간접적인 증권 투자로 구성돼
있고, 기업들은 대부분의 투자 자금을 은행 차입 대신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조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런 미국에 대한 수식어를 다시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미국은 "투자자가 아닌 거래자(trader)의 나라"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증시의 폭발적인 활황을 틈타 "데이 트레이더(day trader)"로
불리는 초단기 매매꾼 등 투기적 투자자들이 실세 집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을 빗댄 얘기다.

미 증권감독위원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 증시의 하루 거래 물량
가운데 25%가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첨단 벤처산업의
젖줄이라는 나스닥(NASDAQ)의 경우는 전체 거래의 12%를 데이 트레이더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데이 트레이더"를 직역하면 "일중 매매꾼" 정도가 되겠지만, 실제로는 초
단위로 주식을 사고 팔며 매매 차익을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가의 전문가들이 이들 투기적 거래자들에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들에
의해 특정 종목이 증시의 주도주로 떠오르는 등 "대세 몰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이들에게 "초치기 거래"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온라인
증권사들의 기하학적인 주가 급등 현상이다.

찰스 슈왑, E*트레이드, 아메리트레이드 등 이른바 "사이버 증권회사"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슈왑의 주가는 지난 13일 하룻동안에만 15.5달러가 뛴 1백50.5달러를
기록했다.

덕분에 이 회사는 불과 닷새동안 주가가 40%나 뜀박질하면서 싯가총액이
단숨에 6백10억달러에 달했다.

메릴 린치, 리먼 브러더스, 페인 웨버, 베어 스턴즈 등 4개 "재래 증권사"의
싯가 총액을 합친 것 보다 더 큰 규모다.

아메리트레이드의 경우는 지난 13일 현재 주가가 1백73.25달러를 기록하며
닷새동안 배 이상 치솟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6개월 전인 작년 10월(5.625달러)에 비해서는 무려 30배 이상 급등한
수준이다.

문제는 주요 투자 척도인 주가수익률(PER)로 볼 때 이들 온라인 증권사들의
주가가 엄청나게 과대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통 증권회사인 모건 스탠리의 PER는 18배, 메릴 린치는 25배에
불과한데 비해 찰스 슈왑은 1백70배를 기록하고 있다.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대비로 주가를 따져봐도 모건 스탠리는 5배인
반면 찰스 슈왑은 42배에 달한다.

증권 전문가들 사이에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경영학 교과서에서 가르쳐 온
투자 방정식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기존의 "정석"을 무시한 이런 투자 행태를 곧바로 "투기"로 단정지을 수
있는가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초단기 투자자들에 의해 주가가 주도됨에 따라
증시의 안정성이 한층 더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월가 사정"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적인 자본 이동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월가 자본의 "초 단타 매매"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의 증시로까지 확산되고 있어서다.

미 증시가 오르면 그밖의 증시들도 같이 오르고, 떨어지면 동반 하락하는 등
"공조 현상"이 심화돼 온 점이 그 반증이다.

"실적"이 아닌 "금융 장세"에 힘입어 주가가 연일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는
요즘의 한국 증시야말로 데이 트레이더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냥터"라는
점을 새겨야 할 것 같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