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의 베이징(북경) 주재 대표 L씨는 이달 중순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 공산당 간부 Q씨로 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한국의 의회격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그동안은 L씨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게 관례였다.

대개의 경우 정보가 필요한 쪽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L씨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Q씨는 여느 때처럼 한국의 상황이나 중국에서의 애로점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얘기는 전인대 쪽으로 갔다.

그러자 Q씨의 질문이 시작됐다.

"주룽지(주용기)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을 봤느냐" "국무원이 제출한
정부사업 보고서를 입수했느냐" "중국의 내수진작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으냐" 등으로 끝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그 뒤엔 사회간접시설 확충, 농업정책, 국유기업 개혁, 금융기관 정리,
과학기술 진흥정책, 미국 일본과의 외교정책으로 계속되며 아예 일문일답이
되고 말았다.

단순히 알고있는 지를 넘는 평가와 전망까지 요구했다.

L씨는 점심식사가 끝날 무렵에야 자신이 미리 준비된 질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요즘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국 기업인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 중국당국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정부 방침이 외부에 얼마나 잘 알려졌는 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렇게 외국인 면담을 통해 얻어진 내용은 한 곳으로 보내진다.

취합된 결과를 토대로 중국 정부의 대외 홍보전략이 짜여진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인구의 5%인 6천만명의 공산당원은 정부의 발표내용을 달달 외울
정도로 숙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관영매체인 인민일보의 1면 머리기사에 "학습, 학습, 또 학습하자"는
특대호 제목이 나오는 것도 이때다.

국가 대사가 끝난뒤 보름 또는 한두달 후에 느닷없이 이미 발표된 정책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다시 실리는 것도 홍보전략의 일환이다.

한국에선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로 국정홍보처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전담기구가 없어서 그동안 국정홍보가 제대로 안됐는 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공무원들이 식사 자리를 쫓아다니며 나라살림을 홍보하고 민심을 파악하는
중국의 자세를 본받을 일이다.

< 김영근 베이징 특파원 ked@mx.cei.gov.c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