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추구"라는 구호는 쉽게말해 정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경제죽이기"는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연금 확대실시"만큼 좋은 정치적 구호도 흔치 않다.

표와 인기를 의식하는 정치인치고 이를 마다할 수 있는 소신있는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다.

당대가 누릴 수혜폭을 늘리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세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종언을 선언한지 오래다.

국가가 지원하는 복지의 규모를 키워봤지만 오히려 그것이 복지를 갉아먹는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스웨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모든 복지 선진국가들이 "복지 실험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 근로자들의 경우, 과거에는 모든 은퇴준비금을 영국정부가 관리하는
1차 기초연금(Basic State Pension)과 2차 연금(SERPS)에 투입했었지만
이제는 2차 연금중 일부를 민간이 운용하는 기금에 맡기고 있다.

이른바 대대적인 "기금 민영화"에 착수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왔다.

연금수혜자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연금관련 지출이 줄어듬과
동시에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연금 지급액은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민간운영기금의 규모 또한 크게 늘어나 현재 1조4천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영국의 국민총생산(GDP)보다 큰 규모다.

복지국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스웨덴정부도 과거에는 근로자들
에게서 소득의 18.5%를 퇴직연금납부금으로 갹출,이를 정부가 모두 관리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중 2.5%를 따로 떼어내 민간기금에 관리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영국의 사례를 복제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우리는 이같은 시대적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남들은 축소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오히려 늘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연금기금에 유입되는 금액이 지출보다 많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4대 연금의 금고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상태이고 공무원연금 또한 4-5년 후면 적자로
들어선다.

국민연금과 교원연금 또한 은퇴증가가 본격화되면 적자를 면키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러니 차세대가 그 빚을 떠 안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도 "베이비 붐"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게 되는 15-20년 후면 국민연금
(Social Security)이 적자를 면키 어렵게 돼 있다.

이에대한 수술문제가 미국사회의 최대현안이다.

영국의 사례를 본받아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재정은 흑자를 구가하고 있다.

이 흑자를 "연금구멍 메우기"에 쓰겠다는 게 클린턴의 구상이다.

이에대한 공화당의 입장은 물론 반대다.

흑자가 났으면 일률적으로 세금감면(10%)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작은정부=시장경제=규제개혁=민영화"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고 판단되자 요즈음은 슬그머니 한 발짝
후퇴해 버렸다.

2000년 선거가 공화당의 "입바른 소리"에 재갈을 물려놓은 꼴이다.

우리에게도 개인연금이 열려있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크게 보아 우리나라의 연금은 정치권과 행정편의주의에 희생된
동네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아직까지도 "정치적 선심"의 제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경제운용상 어딘가 돈 쓸 일이 생기면 이를 메꾸기 위한 "갹출재원 제1호"가
연금이었다.

재경부의 한마디에 힘없는 연금들은 선뜻 금고를 열어주곤 했다.

그러니 투자수익률이 엉망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복지정책의 방향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설정돼야 한다.

이를 무시하다 "빚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들"이었다는 역사적 오명을
자초해서는 곤란하다.

<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