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토맥 강가에 위치한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뒤 벽면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글귀는 제퍼슨의 법률관을 읽게 해준다.

"나는 법이나 헌법을 자주 고치는 데 찬성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은
사람과 사회의 발전에 따라 바뀌는 것이 순리다. 때때로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몸이 다 큰 이후에도 예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 대통령이 1816년 그의 친구 새무얼 커치발
에게 보낸 편지속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이같은 제퍼슨의 법률이념을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은 지난 2백여년
동안 26번의 개헌을 했다.

미국사회의 발전에 발맞춰 "미국 사람들 몸에 맞게" 헌법을 바꿔온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개헌은 <>언론자유 <>여성에 대한 참정권인정 등 미국시민의
인권을 보다 신장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법은 사회와 인간정신의 변화에 맞게 바뀌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 정가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내각제가 과연 우리 국민이
원하는 "새 옷"이냐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자민련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굳게 맺은 약속이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온 국민이 일부 정파간 약속의 볼모가 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반응이다.

일부는 내각제 도입이 "국민과의 약속"었다고 까지 강변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내각제를 놓고 투표해 본 기억이 없다.

우리 헌법이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원인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이 제공했다.

그들은 "개헌=장기집권"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불식시켜야 했고 그 고육책으로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기형적 "5년 단임제"였다.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은 그동안 현저히 커졌다.

이제 군사독재에 대한 우려도 많이 불식됐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군사독재가 남겨놓은 족쇄와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단임제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가히 편집적이다.

어두웠던 과거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무이한 선택이냐에 대한 의문 또한 적지 않다.

이와관련, 61년부터 현재까지 백악관을 출입하며 케네디 존슨 닉슨 부시
클린턴까지 수많은 역대대통령을 지켜봐온 UPI의 헬렌 토마스 기자는
"대통령도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도 학습과정을 거친다. 초기에는 실수도
많이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걷게 되고 틀을 잡아간다. 특히
2기에 접어든 대통령들의 노련함은 예술에 가깝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군사독재 같은 장기집권의 우려만 없다면 노련한 대통령의 지도력이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리 없다.

행정부(5년)와 입법부(4년)의 선거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데 따른 손실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지 오래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선거까지 계산하면 선거로 인한 국력소모는 적지
않다는 게 일반의 지적이기도 하다.

내각제가 21세기 한국의 번영을 구가하게 해 줄 수단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워싱턴의 브르킹스등 각종 연구소에 나와 있는 많은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이 개혁을 외치면서도 개혁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구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각제를 포기했으면 하는 견해를 가진 일본인이 적지 않다"
는 반응들이다.

오래 내각제를 시행해 본 일본인들의 얘기니까 소홀히 들을 수 없다.

"우리 경제는 정치가 죽였다"는 엄연한 진실 앞에서는 더욱 공감이 가는
얘기다.

지금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정신이 없는 때다.

따라서 권력구조에 관한 문제가 국가적 의제의 머리를 차지할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면 국민투표 실시를 고려해 볼만하다.

내각제와 중임제는 물론 가능한 모든 대안을 내놓고 토론과 검증과정을
거쳐 국민이 선택하게 해야한다.

이 과정에 현정부는 단임제를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