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시험"의 난이도 조절을 둘러싼 미국 공인회계사(CPA) 업계 내의
논쟁이 요즘 월가의 큰 관심사다.

대형 회계법인들을 회원사로 둔 공인회계사 연구회(AICPA)가 난이도를
낮추려는 데 대해 1천여개 중소 회계법인들의 이익 단체인 전국
개업회계사협의회(NCCPAP)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서다.

AICPA는 이틀동안 상법 등 4개 분야에 걸쳐 치르고 있는 필기시험 과목을
2개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2년이상의 유관분야 근무경험"으로 돼 있는 응시자격 요건도
"1년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CPA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얘기다.

이에대한 NCCPAP의 반대논리는 간단하다.

CPA의 자질 및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난이도와 자격요건을 완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로 월가에 본사를 둔 KPMG 딜로이트 등 대형 회계법인들이 "자질 논란"을
무릅쓰고 CPA 시험의 난이도 완화를 추진하는 데는 그만큼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

구인난 때문이다.

9년째에 접어든 미국 경기의 장기호황으로 신규 공개를 하는 기업이
폭증하는 등 일감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CPA 인력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90년대 들어 미국내 상장기업 수가 30%나 늘어난 반면 CPA
총수는 13만1천여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거의 차이가 없다.

더욱이 CPA 지망생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대학생들의 CPA 외면현상은 최근 더욱 두드러져 주요 경영대학원의
회계학 전공자가 2-3년 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CPA를 기피하는 까닭은 실속에 비해 일이 고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일 숫자로 가득 찬 회계장부와 씨름해야 하는 고된 업무에 비해 초봉이
연 4만달러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보공학이나 경영관리 시스템 등
인접학문을 하는 쪽이 전망도 밝고 수입도 훨씬 나은 게 사실이다.

이에따라 월가의 몇몇 대형 회계법인들은 문학 과학 등 비경영학 전공자들
중에서 CPA 지망생을 모집해 집중 훈련시킨 뒤 채용하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성급한 요건 완화는 "함량 미달"을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회계사 업계를 공멸시킬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고 있다.

"경찰이나 응급실의 간호사가 모자란다고 해서 선발기준을 낮출 수는
없지 않느냐"는 비유까지 동원한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미국 상장기업들의 회계장부 조작사건에 의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영실적을 실제보다 부풀려 공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는 센던트, 웨이스트매니지먼트, 리벤트 등의 회계장부
조작사건은 "CPA들의 회계감사가 보다 엄정했더라면"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란이 어떻게 귀결되건, 월가의 CPA 구인난은 미국이 그동안 전 세계에
자랑해 온 "미국식 투명경영 시스템"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현상이다.

기업의 건전 경영을 감시하는 파숫군이라고 할 CPA의 국내 위상은 어떤지
차제에 한번쯤 짚어봐야 할 것 같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