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회나 한국국회나 여야가 갈려 당리당략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한미양국의 정치를 같은 저울대 위에 올려 놓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대결양상이 빚어지더라도 두 진영은 나름대로의 철학과 준거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국의회다.

클린턴에 대한 탄핵문제만 하더라도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실적 균형감각(proportionality)"을 내세우는 민주당과 "법치원칙(rule
of law)"을 중시하는 공화당간의 이념 대립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지만 바로 이런 딜레마가 미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문제의 본질을 들추어보면 참으로
낯 뜨겁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안기부가 국회에 상주하며 정치사찰을 했느냐의 여부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는 우리나라 선량들의 모습을 대하다 보면 저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너무도 원시적인 우리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우리 국회는 하루빨리 질 높은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법률 공장"이다.

미국의 모든 법은 의원들이 만드는 "의원입법"이다.

"행정입법"이란 용어는 설 땅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행정 공무원들이 법을 만든다.

우리나라 법률 중 95%이상이 그런 법이다.

국회는 이를 심의할 뿐이다.

관료들이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온 법에 "국회"라는 상표만 붙여
내보낸다.

"행정독주 면허증"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행정부에 끌려 다니기만 한다.

때때로 클린턴 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미국 의원들 같은 권위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한국이다.

면허를 내줄 바에야 행정관료들이 만들어 온 법에 대한 품질관리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물건도 제대로 검사해보지 않고 회기에 쫓겨 그대로
도매금으로 넘기기 일쑤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은 자기가 시장에 내보낸 법률이 있는지 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

자기가 만든 법률이 아니다 보니 내용을 잘 알리 없다.

그러니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는 예도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국정감사 때만 되면 공허한 호통만 치고 마는 것이 한국
국회다.

"입법은 없고 "통법"만 있다"는 표현은 그래서 생겼다.

미국 의원들은 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바침하는 곳이 의회산하 연구지원센터(CRS)다.

CRS는 7백여명에 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확보하고 정치 경제 사회
외교는 물론 정보통신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의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대형
의회 연구지원 기관이다.

1년에 쓰는 예산만 8천만 달러에 달한다.

김대중정부는 "작은정부"를 표방했고 그 시범적 조치로 청와대기구를
축소했다.

같은 맥락에서 행정부도 줄이고 아울러 행정부 산하의 비슷비슷한 각종
연구기관들도 통폐합하겠다고 했지만 흐지 부지 됐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사람을 잘라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통폐합으로 생긴 잉여 연구인력을 국회산하로 보내는 것이다.

미국의 CRS 처럼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지원하는 전문가집단으로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도 활발해질 수 있다.

연구원들을 당장 줄일 필요도 없다.

행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입법불균형도 시정할 수 있다.

국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국회 개혁은 숫자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의회는 상원 1백명에 하원 4백35명으로 구성돼있다.

물론 우리나라 의원수 299명보다 많다.

그러나 미국 인구가 2억7천만이라는 점을 감안해 비례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의원수는 1천5백 명이나 되는 셈이다.

너무 많다.

모든 분야에서 군살이 빠지고 있고 원가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만 개혁 밖의 성역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