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축통화의 꿈 ]]

"달러 독주는 끝났다.

올해를 "엔 국제화"의 원년으로 삼겠다"

오부치 총리가 엔화 국제화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다.

그는 지난 7일부터 유럽을 방문 중이다.

목적은 분명하다.

일본 엔화을 달러 유로에 이은 3대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유로-엔 환율범위 설정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등으로부터 "엔의 국제화를 환영한다"는
언명을 받아내는등 이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엔 국제화라는 말이 단순히 국제금융 시장이나 통화 무역분야등에서
엔화의 사용을 늘리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엔 국제화는 기실 엔 경제권을 전제로한 발상이다.

경제력에 걸맞는 유무형의 화폐가치를 유지하겠다는 감정상의 문제도
깔려있다.

일본이 엔 국제화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말 마쓰나가 대장상을 통해서였다.

그 전에는 엔경제권 엔블록 엔앵커(anchor)등으로 쓰여왔다.

일본정부와 언론은 그동안 엔 국제화라는 말을 공개적으로는 사용하기를
꺼려왔다.

"제2의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분위기가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순식간에 달라졌다.

달러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유로의 탄생도 엔국제화를 부추긴 요인이
됐다.

현재 각국 통화당국들이 보유하고있는 외화가운데 엔화는 10%선에
불과하다.

달러(65%)는 물론 마르크화(15%)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더욱이 유로가 출현하면서 엔화가 국제금융무대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판단도 엔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게된 배경이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유로의 등장은 달러보다는 엔화에 더욱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3일 자민당 엔 국제화 소위원회가 일본 금융시스템
개혁에 관한 의견을 모아 정부측에 전달한 바 있다.

이 개혁안의 골자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일본국채와 사무라이본드를 해외투자가가 구입할 경우 이자소득세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가 재정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발행한 상환기간 1년미만의
단기국채(TB)에서 발생하는 상환차익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정부가 외환시장개입용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FB)을
해외투자가를 포함한 일반 공모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세계 교역규모를 감안할 경우 전체 통화에서 차지하는
엔비중이 적어도 25%는 되어야한다는 내부 목표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를 과연 달성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다.

최대 변수는 초저금리 정책의 향방이다.

일본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는 각각 0.5%,1%선에 머물고 있다.

5%안팎인 미국에 비해 엄청나게 낮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엔화가 미국으로 몰려 들어갈수 밖에 없다.

엔화가 2류통화라는 멍에에서 벗어날수 없게되는 것이다.

금리인상 없이는 엔을 국제화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장의 금리인상은 가뜩이나 위축된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더욱 심각한 장애물은 일본 자신의 태도에 있다.

일본은 지난 97년 아시아인근국들이 심각한 외환위기로 말려들어가는
과정에서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이웃나라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돌아보면 그때만한 절호의 시기도 없었지만 일본은 이기회를 놓쳤다.

최근들어서야 3백억달러의 미야자와플랜을 미끼로 엔국제화를 시도할
움직임이지만 위기국들이 이를 기회로 일본에 의존하기에는 시급성이 훨씬
낮아져 있다.

엔화의 국제화를 위해 일본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중국 위안화와의 경쟁이나 한국등 아시아인근국들과의 과거사 문제등
풀어야할 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본이 엔국제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전개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