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리더를 노린다 ]


"미국은 일본과 동아시아를 금융노예로 만들었다. 미국의 시장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대동아강엔권''을 창출해 미국에 대항하자"

이시하라 신타로 전 일본중의원의 말이다.

그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선전포고. 노(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경제"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 책은 요즘 도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물론 일본 우익의 흰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초인 지난 4일 나카무라 쇼자부로 법무상은 "미국의 시장경제논리는
미사일과 핵무기에 의해 뒷받힘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도 평화헌법을 고쳐야(재무장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조야가 최근들어 부쩍 자주 꺼내는 이같은 주장들의 요지는 다름 아닌
"일본의 아시아 리더론"이다.

경제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경영학계의 선두주자인 가고노 다다오 고베대 교수는 "경제체제라면
일본 방식이 옳다.

미국식은 곧 몰락한다"며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사카키바라 대장성 차관도 "강한 달러는 끝났다. 미국 경제는 버블이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강한 일본"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던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안도 아시아
인근국에 3백억달러를 풀기로한 "미야자와 플랜"을 계기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적극적인 움직임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대한
뿌리깊은 불만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최대의 채권국이 세계최대의 채무국에 더이상 눌려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0%인 약 5백조엔에 그치고 있지만
개인금융자산 규모는 1천2백조엔으로 세계 최대다.

여기에 외환보유고가 2천1백39억달러(98년 10월말 기준), 대외순자산은
9천5백87억달러(97년말)로 모두 세계최대 규모다.

일본인들은 나아가 미국이 기록적인 경기호황을 즐기고 있는 것도 일본
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버블이 꺼진 후 금융자산이 급속도로 미국으로 빨려 들어갔고 미국
국채(TB)의 25%를 사들였다.

미국 경제의 스폰서가 바로 일본이라는 얘기다.

채무국(미국)이 채권국(일본)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는 등 대목도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유로의 등장이 여기에 불을 지폈다.

유럽이 하나가 돼 미국과 맞서는 정도라면 아시아도 일본을 축으로 하나가
될수 있다는 논리를 일본은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일본이 유럽에서의 독일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찬성하는 견해도 없는 것은 아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는 특히 "반미 친일"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전체로 볼때 일본리더론은 아직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미국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은 지난 97년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방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오히려 아시아위기에 대한 일본책임론을 거론하며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않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의 중.일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에
관해 일본의 미온적인 태도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아시아에도 리더가 필요하지만 당신들은 아니다"라는 강력한 메세지가
장쩌민 주석의 발언 곳곳에 뭍어났다.

일본의 아시아리더론에 대해 아직은 "노(No)"쪽의 대답이 많다는 얘기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