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미국의 최대 화두는 유로화의 출현이다.

월가에서는 "3년설" "10년설" 등이 난무한다.

유로화가 달러를 따라잡는 데 걸릴 기간에 대한 "점 치기"들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달러 독주시대"가 종식될 것 만은 확실하다는 얘기다.

이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민은행)은 외환보유고의 일정 부분을 유로화로 운용할
방침임을 천명했다.

일본의 닛폰생명보험도 유로화 투자를 대폭 늘려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장은 "수년안에 세계적으로 5천억-1조달러
의 돈이 달러에서 유로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달러 수요의 감퇴는 세계경제 무대에서 미국의 파워를 그만큼 약화시킬
것이라는 게 미국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의 우려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랜드 11개국의 경제력을 합칠 경우 미국을 능가하는
부문이 적지 않다.

세계 무역고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97년 기준)은 14.1%인데 비해
유로랜드는 18.8%나 된다.

국채 발행 규모에서도 유로랜드가 미국을 20% 이상 능가한다.

미국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달러 가치의 하락이다.

달러값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그 여파는 곧바로 미국의 실물
경제를 강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염려되는 것은 물가 상승이다.

미국이 지난해 3.7%의 견실한 성장 속에서도 1%대의 낮은 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달러 덕분이었다.

달러 강세는 수입 물가를 계속 하락시켜갔다.

미국이 물가 못지않게 우려하는 것은 해외 자금조달 비용의 상승이다.

세계 최대의 순채무국인 미국으로서는 달러화 약세가 심각한 악재다.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 연방정부와 민간 기업들의 해외 차입 비용이 당장
올해부터 수백억달러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저장 수단"으로서의 국제적인 달러 수요에 편승해 챙겨온 막대한
"무이자 금융 소득"도 대폭 축소될 판이다.

달러화 발권기관인 미 재무부는 미국내 소요분외에 매년 1백30억-
1백60억달러씩을 추가로 발행해 왔다.

해외에서 그만큼 사장되는 달러가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으로선 정확히 그 액수에 해당하는 경제적 효용을 한푼의 비용(이자)도
물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공급받아온 셈이었다.

이처럼 미국이 달러를 앞세워 누려 온 "기축통화 프리미엄"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은 셈이다.

달러가 국제 기축 통화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는 동안에는 미국의 외채가
아무리 많더라도 국가 부도를 염려할 일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달러를 더 찍어내 빚을 상환하면 그 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매년 막대한 무역적자를 누적하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해 둬야 할 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외 통상및 경제 정책이 경성으로 급선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 워싱턴 사무소의 최성환 조사역(경제학 박사)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을 주도하면서 내세웠던 자유 무역(free trade)
대신 교역 상대국의 문호 개방을 강조하는 공정 무역(fair trade) 쪽으로
통상 기조를 빠르게 바꿔나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럽연합(EU)에 대해 바나나 무역전쟁을 격화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 주요 수출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는
한국이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