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과연 바닥을 벗어났는가.

이 문제가 요즘 월가 한국전문가들 사이에 최대 이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각종 보고서들 사이에는 한국 경제에 관한
"긍정"과 "부정"의 상반되는 시각이 엇갈린다.

경상수지 환율 금리 등 거시지표의 호전을 예로 들어 한국경제의 "위기
탈출"을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등을 지적하며
"아직 멀었다"는 전문가들도 만만치 않다.

양대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일주일
남짓한 간격으로 발표한 한국 관련 보고서는 이런 상반된 시각을 그대로
보여 준다.

S&P는 최근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기아자동차와 서울 및 제일은행에 대한 처리가 연내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국의 대외신인도 상향조정을 전향적
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앞서 발표된 무디스의 보고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불가결한 구조개혁이 재계 노동계 등의 각종
반발에 부딪쳐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한국경제의 위기 탈출도, 신인도 상향 조정도 생각하기
힘들다는게 무디스의 결론이었다.

이런 상반되는 시각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코리아 펀드를 운영하는 스커더 켐퍼 증권은 한국경제에 대해 비판적인
대표적 월가 기관중의 하나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얼마 전 월가에서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에서 장밋빛
청사진을 늘어놓는 정부 관계자에 대해 대기업들의 개혁마인드 부족과
정부의 미온적 태도 등을 지적하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반면 월가 굴지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는 지난주 외신기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가진 국제경제 브리핑에서 "한국은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을 진행중인
국가"라며 투자 1순위에 올려 놓았음을 공개했다.

이처럼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한국
비판의 선봉에 선 월가 전문가들중 상당수가 한국계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무디스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자나, 스커더증권 한국 책임자 등은 월가에서
손꼽히는 한국계 전문가들이다.

당연히 뉴욕 주재 국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을 도와줘야 될 코리언 아메리칸들이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권위있는 미국 전문가들이 한국을 호평하기 시작했는데 한국계 인사들이
굳이 재를 뿌려서야 되겠느냐는 인식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자리잡기 위해 조국을 난도질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까지 마다 않을 정도다.

이른바 "코리언 콤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부정"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월가의 평가에 따라 한국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물꼬가 풀렸다 죄어졌다
하는 형편인 만큼 당하는 쪽의 반응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계 만큼 한국인과 한국경제의 속사정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이들의 고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미국 전문가들로부터 듣기 좋은 말 몇마디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서 귀에
아픈 말들을 "코리언 콤플렉스"의 산물로 무작정 매도하는 모습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얘기다.

마침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2일자 기사에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인해 개혁 마인드가
느슨해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조금의 회복징후에 취해 구조개혁을
외면한다면 제2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를 내보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을 고치고, 진심어린 충고는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도움을 준다"는 선현들의 금언을 되새겨야 할 때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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