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연일 수직하강하는 가운데 급기야 러시아 중앙은행이
당초 계약된 외환거래를 취소하는가 하면 모라토리엄(외채지불유예) 대상이
아닌 장기외채도 상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로인해 러시아 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으며
일부 은행에서는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는 등 패닉(공황)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이 긴급대책을 숙의하고 있으나 러시아
자체의 정치.경제적 불안이 워낙 심해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7개국(G7)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러시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즉각 회의를 열 계획은 없다"며 "앞으로의 상황은 러시아 자체에
달려있다"고 말해 추가지원 걔 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27일 모스크바발 외신들은 서방 금융기관
소식통을 인용, "러시아 정부가 일부 장기외채를 상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기외채는 모라토리엄 대상이 아닌데도 이를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영국의 신용평가기관 피치 IBCA는 이날 "러시아가 1천4백억달러의
외채 전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 장기외채의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앞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26일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달러를 팔기로 돼 있던 계약을 전격 취소했다.

루블화가 계속 폭락하자 더이상 방어하기 어렵게 됐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서방 금융기관들은 즉각 "러시아가 루블화방어를 포기했으며 이제는
중앙은행 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번 국채 구조조정안으로 자신들의 탈출로가 봉쇄된
것으로 보고 충격상태에 빠져있다.

닛코유럽은행의 리타 슈마허는 "러시아 정부가 제시한 방안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큰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며 "외국인 투자자들로서는
깨끗이 단념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탈출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금융계도 이번 국채 조정방안에 따라 무더기 도산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1천5백여개에 달하는 은행의 경우 전체 자산의 40%정도를 단기 국채에
투자해놓은 상태여서 올연말께는 3백-8백개의 은행만 살아 남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업계 11위인 임페리얼 뱅크가 26일 폐쇄됐다.

또 러시아 보험회사 연합회도 보험사들의 고객들에 대한 지불금이
15일분밖에 남지 않은 파산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국제지원대책 모색=러시아 사태가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러시아측에 신속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는 26일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와
긴급회담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또 미국 정부도 다음달 초로 예정된 미.러 정상회담에 앞서 실무진을
급파, 러시아측과 경제대책 협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금지원 보다는 우선 러시아 스스로 개혁을 실천해야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국제적인 지원이 있더라도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러시아내에서는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이 옐친 대통령의
하야를 거듭 촉구하는 등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현정부가
국제사회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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