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는 쓰러질 줄 모르는 오뚝이인가.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중남미에 이어 유럽 증시까지 연쇄폭락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월가의 상대적 건재가 세계 증권가의 화제다.

떨어지는가 싶다가도 낙폭이 지나치다 싶으면 반드시 일정한 폭까지
되오르는 뚝심을 발휘한다.

지난 21일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다우존스 지수는 이날 오전 한때 2백80포인트나 곤두박질치는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후의 보루인 뉴욕증시마저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오후들어 도처에서 "사자"주문이 몰려들었다.

2-3시간 만에 다우지수는 2백포인트 이상 가뿐하게 회복됐다.

그 뚝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해석은 많다.

갈 곳을 잃은 아시아 유럽 등 각지의 뭉칫돈이 월가로 몰려들고 있는
덕분이라는 풀이가 그 중 하나다.

물론 요즘은 그렇다.

그러나 월가는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의 진단을 내리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저변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미군단"의 진입이다.

주가가 떨어질만하면 몰려들어 떠받친다.

다우존스 지수의 "하방경직성"을 지키고 있는 보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몇년 새 주식투자가 "새로운 국민적 레저"로
자리잡을 만큼 붐을 일으켜 왔다.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공항 라운지에 놓여있는 TV세트의 채널이 CNBC나
CNN-fn같은 증권 전문방송에 맞춰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CNBC의 경우 작년 한햇동안 시청률이 무려 75%나 높아졌다.

증시정보를 시시각각 전해주는 CNN-fn의 인터넷 홈 페이지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웹 사이트로 떠올라 있다.

신문 가판대에는 "지금이 매입적기인 뮤추얼 펀드 10선" "주식투자로
부자되는 법" 같은 제목으로 표지를 장식한 경제전문지들이 넘쳐난다.

여기에다 휴대폰이나 이동통신용 단말기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주식투자를
"상시 레저 게임"으로 바꾸어 놓고있다.

화물차나 택시 운전기사들이 짬날 때마다 단말기를 두드려 주가동향을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거래주문을 내는 풍경이 낮설지 않게 됐다.

여름 피서지에서 주식동향을 추적하는 바캉스족들의 모습 역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미국증시의 저변이
얼마나 넓혀졌는 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 가계의 절반이상이 직접 또는 뮤추얼 펀드나 각종 연기금 등을 통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는 통계다.

89년까지만 해도 주식에 손댄 가계는 3분의 1에도 못미쳤었다.

뿐 만 아니다.

미국인들은 보유자산의 28%를 주식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FRB가 가계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한 4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인들이 이처럼 다투어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증권시장이
시장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원천적인 믿음에서 비롯된다.

증시가 조금만 이상징후를 보이면 정부가 뛰어들어 "대책"을 내놓는
게 당연시되는 한국이 바로 그 "대책"에 발목이 잡혀있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