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홀대받고 있다.

세계신문과 방송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US오픈 챔피언에 대한 당연한 대접일 뿐 행간을 읽어 보면
냉소와 싸늘함이 짙게 깔려 있다.

박세리 선수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의 세련되지 못한 분위기 연출을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관중)들이 "모든" 선수를 "똑같이" 응원해 주는 것은 골프만이
지닌 독특한 문화다.

한 선수의 퍼팅이 안들어 가는 경우 그 선수가 어느 나라 선수건 간에
관중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탄식해주는 것이 골프다.

반대로 어느 선수건 멋진 플레이를 펼칠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니 엘스, 백상어 그레그 노먼, 이안 우스남, 닉 팔도등 전설적 인물들
모두가 비미국계지만 그 어느 누가 US오픈 컵을 가져가도 개의치 않는 게
지구촌 골프문화다.

그저 개인의 승리를 축하해 주고 같이 즐길 뿐이다.

라이더 컵처럼 유럽과 미국선수들이 편을 갈라 경쟁를 벌이는 골프게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US오픈 같은 대회에선 국적이 따로 없다.

국수주의적 행동이 끼어들 틈이 없는 독특한 사교의 장이라고 봐야한다.

월드컵처럼 국가간의 대결도 아니고 올림픽 게임도 아닌 것이 US오픈이다.

그러나 박세리의 등장으로 태극기가 골프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도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태극기를 흔드는 "돌출행동"이 계속되자 이제 골프장에서 태극기는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로 냉대받기 시작했다.

골프처럼 에티켓을 강조하는 운동도 없다.

퍼팅이나 티 오프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숨소리마저 죽여주는 것이
골프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세리를 따라 다니는 무절제한 한국인들의 사진기
셔터 소리와 박세리를 외쳐대는 "일방적" 응원함성 소리는 미국관중 전부를
상대선수편으로 몰아주는 요인이 돼버렸다.

미국 신문들은 박선수가 최후의 승자가 된 직후 그의 부친이 "그린을
밟고 내달려가" 딸을 포옹했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일부에선 삼성이 박세리선풍으로 5억달러 이상의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도 썼다.

그러나 광고 자체가 상품 세일즈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수가 노래만 잘 부른다고 "인기있는"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창력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노래를 부르는 소질이외에 무대매너, 춤, 악기 다루는 솜씨, 패션, 용모,
분위기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뭉쳐져야 진정한 프로일뿐 아니라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그것은 박선수의 몫이 아니라 주위 시람들이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다.

세일즈는 "문화를 파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프랑스제품을 살 때는 프랑스 문화를 사는 것이고 일본제품을
사는 것은 일본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를 사는 것이다.

박세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의 골프 뿐 아니라 그녀가 지니고 있는
모든 문화를 사고 즐기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촌시대 새 문화시민들의 의식이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