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의 "입"에 국제 금융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엔.달러 환율에 즉각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어서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에 엔화는 시장을 가리지 않고 폭락했다.

11일 루빈 장관은 미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엔저가 아시아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도 "엔화약세는 전적으로 일본 경제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만큼 해법은 일본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본 정부가 한시바삐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는 충고 끝엔
미국의 시장개입이 임시방편일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냉담한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엔화하락을 막기 위해 나설 의사가 없다는 "확인사살"이었다.

이 발언직후 엔화는 단숨에 달러당 1백44엔을 돌파해 8년만의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루빈 장관의 엔폭격은 지난달 24일부터 본격화됐다.

US월드&리포트지에 "달러당 1백50엔도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을 흘린 것.

이날 외환시장은 발칵 뒤집혔고 엔은 1백35엔대에서 1백37엔선으로
미끄러졌다.

"1백50엔 용인설"이 불거진지 불과 1주일만에 루빈은 또한차례 충격적인
발언을 던졌다.

파리의 G7재무차관 회담을 며칠 앞둔 지난 7일 그는"엔화 약세가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G7에서 엔화 하락세를 잡아줄 방안이 나올것이라는 세간의 기대를
한방에 날려버린 셈이다.

이 말로 엔은 1백38엔선에서 1백40엔직전으로 급전직하했다.

물론 루빈 장관이 무조건 "강한 달러"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월가출신인 루빈은 철저한 시장경제론자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실물경제의 흐름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엔화약세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과 통한다.

이젠 그 영향력까지 그린스펀 의장에 필적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대통령이자 세계 금융시장의 황제로 불려온 그린스펀 처럼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파워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달러당 1백50엔이 시야에 잡힌 지금 국제금융가는 미국을 대변하는 루빈의
언행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루빈 장관은 이달 29일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한국 중국을 방문한다.

휘청대는 아시아의 경제현장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추락하는 엔에 날개를 달아줄"발언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3일자 ).